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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un 11. 2016

Forest Rain

오후에 찾아온 잠깐의 휴식 

수요일은 하루 종일 바빴다. 복학 후 첫 수강신청을 어찌어찌하다 보니 수요일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전부 강의로 채워져 있었다. 물론 금요일은 오전 수업 하나뿐이어서 그 이후에는 꿀 같은 연휴를 보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날 수요일은 너무 힘들었다.


친구랑 점심을 부랴부랴 먹고 강의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칠판에 휴강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글씨를 보고 웃으며 돌아갔다.

무려 3시간짜리 수업이다.


친구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다.


"야~ 당구나 치러갈까?"

"야 그러지 말고 피시방에 가서 스타 한겜 콜?"


사실 나는 당구도 겜도 하기 싫었다.


"미안한데 나는 좀 쉬어야겠다. 오늘 이상하게 힘이 드네."

"헐! 니가 당구를 마다한단 말이냐! 알았다. 우리는 갈게. 마지막 강의 수업 때 보자."


좋아하는 당구도 마다했다. 일단은 나에게 주어진 3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학교 근처는 별거 없어서 나는 천천히 석계역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이쁘게 생긴 찻집을 발견했다. 크진 않지만 이상하게 그곳 찻집은 넉넉한 느낌을 줬다. 사람도 없어서 한가한 느낌이 이상하게 좋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솔직히 차는 별로 관심 없었지만 일단 들어가서 앉았다. 메뉴를 한참 쳐다봤다. 사실 메뉴에 적힌 차 종류가 뭔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는데 찻집 사장님이 오셔서 하나씩 설명을 해주셨다.


"아! 그런데 'Forest Rain' 이건 뭔가요?"

"홍차의 종류예요. 살짝 딸기향도 나고 맛있어요"


이름이 끌렸다. Forest Rain.


'숲에 내리는 비'라.... 


여름에서 가을로 걸어가는 그 시간을 가로지르는 따사로운 오후였다.

나는 '숲에 내리는 비'를 상상하며 차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설레이던지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순간 찻집 안이 'Forest Rain'의 향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Forest Rain'과 함께 그날 오후 내내 시간이 멈춰 있었던 거 같았다.


Yoshiko Kishino - Forest Rain (2004년 음반 Praha)



2010년 현재 다니는 IT회사에 입사지원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대학교를 갔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 길을 다시 걸었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을 놔두지 않는다. 그 찻집은 없고 그곳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와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그곳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Yoshiko Kishino의 연주는 투명한 흔적을 남긴다. 섬세한 터치와 감성적인 연주가 너무나 좋다. 이 작품은 2004년에 베이시스트 George Mraz와 드러머 Pavel Zboril이 참여한 작품이다. 타이틀이 <Praha>인데 그렇다. 이 작품은 프라하에서 녹음한 작품이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아주 오래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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