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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Dec 21. 2016

For Heaven's Sake

제발! 

오전 마지막 전공과목 시험을 마치고 저녁에 친구들이랑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들 다른 약속들이 잡히면서 이 모임은 쫑이 나버렸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 친구넘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야! 미안하다. 여친이 자기도 중간고사 끝났다고 대학로로 오라고 하네. 쏘리~"


이렇게 되고 보니 오후 내내 왠지 모를 외로움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동아리방에는 쓸쓸함만이 있었다. 혼자 가만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그녀다!


"안녕하세요! 오빠도 중간고사 끝났어요? 저는 오늘 오후에 마지막 시험 치면 끝이에요~"

"아! 나는 오전에 마지막 전공과목 시험으로 중간고사는 끝났어~"

"어? 그래요? 잘 됐다. 오늘 저희 러시아 문학 관련 모임이 저녁에 있는데 혹시 같이 갈 수 있어요?"

"잉? 러시아 문학? 난 그런 거 잘 모르는데?"

"괜찮아요! 고상하진 않고요. 그냥 저녁 모임 같은 거예요~"


일단 수락을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양새가 좀 웃겼다.


음 내가 아는 건 기껏해야 톨스토이, 도스트예프스키 이게 전부인 거 같은데? 게다가 읽어본 적도 없어!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일단 그녀의 호출이니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장소는 삼청동 어느 카페.


지금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삼청동에는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카페들이 많았다.

아티스트들이 그룹으로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작지만 갤러리형 카페들도 있었고 그 근방에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대림 미술관'도 있어서 그림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자주 다녔던 곳이다.


친숙한 느낌도 들었다. 아마도 모임은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될 거 같은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 반 그녀 옆에 앉아있을 생각 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착한 곳은 내가 잘 아는 카페였다. 경복궁 근처 대림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그 카페는 5명의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카페로 딱히 간판이 있진 않고 그중 한 분이 만든 철제 작품이 간판으로 있는 조그마한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 그녀 포함에서 4명이 앉아 있었다. 오늘의 바리스타는 아는 형이 맡고 있었다.


"어! 오랜만이네?"

"형! 오늘의 바리스타네요~"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폈다. 생각 외로 그리 고리타분한 모임은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던 '낯설게 하기'가 그날의 주제였다.


"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다들 의외의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주제와 함께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토론 형식의 모임이었는데 술이 없었음에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만큼 그 순간을 보내고 그날도 여지없이 그녀와 함께 사당역으로 향하는데 그녀가 집까지 바래다 달라는 요청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산본역에 도착해서 몇 분을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도 한동안 이야기를 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키스 같은 그런 건 없었다는 것은 함정!


이전엔 간간히 문자나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날 이후로 거의 매일 늦은 밤에도 문자와 통화를 하는 사이로 발전해갔다.


얼마 지나서 그녀에게 사귀자는 말을 건넸을 때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제발! 제발!


웃음으로 답하던 그 순간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듯 한 느낌이었다.


Tina Brooks - For Heaven's Sake (1960년 음반 Back To The Tracks)


Tina Brooks는 Blue Note에서 두 장의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 작품은 정식 발매가 되지 않았다. 


재미있겠도 80년대 중반에 Mosaic Records에서 그 두장을 묶어서 세트 형식으로 LP로 발매되면서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서 복각해서 음반으로 발매되다가 제대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Rudy Van Gelder가 에디션 시리즈로 다시 재발매하면서부터이다. 


개인적으로 <Minor Move>에서는 'Everything Happens To Me'와 이 음반에 수록된 '제발'이라는 의미의 'For Heaven's Sake'를 가장 좋아한다. 

둘 다 발라드라는 이야기지!



그녀에게 고백하는 날은 이 곡처럼 애절했다.

고백에 대한 답변을 받는 순간은 정말이지...


복학생에게도 이런 좋은 날이 오는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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