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밥! 그 잡채!
통신에서 어느 형님이 소개해준 Jaco Pastorius의 'Donna Lee'를 듣고 카피한다고 고통받던 그 시기에 도대체 이런 정신 나간 미친 곡을 누가 만든 건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음반 뒤에 떡하니 쓰여있는 그 이름!
바로 Charlie Parker였다.
사실 이 곡은 Miles Davis의 곡이긴 하지만 저작권 인식이 그리 높지 않던 그 시절 그의 이름이 올라갔고 이것을 Miles Davis가 엄청나게 뭐라고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Miles Davis는 그렇게 'Blue In Green'으로 자신이 당했던 것을 Bill Evans에게 똑같이 한 것을 보면 이 인간도 멀쩡한 인간은 아니었던 듯싶다.
너무나 궁금했다. 도대체 이 Charlie Parker라는 사람은 누굴까???
그래서 그날 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야밤에 몰래 접속을 한다.
"형님들, 제가 Donna Lee를 카피하고 있는데 이 곡 만든 Charlie Parker는 뭐 하는 인간인가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신나게 추천해 주고 설명해 주셨던 방안의 형님들이 침묵을 했다는 것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느 형님이 한마디 하셨다.
"모던 재즈의 아주 큰 영향을 끼친 거인이지. 근데 음반은 차마 추천 못해주겠다."
거의 애걸복걸하든 채팅을 치자 한 형님이 결국 한 장을 추천해 주셨다.
"동상. 그나마 구하기 쉽고 평가가 좋은 음반이 타워레코드에 있거든. <Bird At St. Nick's>라고. 근데 왠 간하면 손에 안 되는 게 좋아. 음질이 너무 구려. 후회는 너의 몫이다!"
결국 나의 수첩에 이 작품을 적어두고 용돈을 모아서 이 음반을 손에 넣었다.
"자. 이제 한번 들어보자"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는 살포시 나의 플레이어에서 이 음반을 꺼내고 말았다.
왜냐하면 훌륭한 연주와는 달리 음질이 너무 조악했기 때문이다.
우와! 시디를 돌렸는데 엘피를 듣는 이 느낌?!?
거기까지 이해하겠지만 뭔지 모르는 대화가 들리는 듯한 소음과 음질이 연주를 듣는데 방해가 됐던 것이다.
형님들이 얄미웠다. 왜냐하면 타워레코드에서 이 음반을 집었을 때 그의 작품들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하고많은 음반들 중에 하필이면 왜 딱 이 음반이냐 이 말이지!
아는 게 없으면 결국 이렇게 당하고 마는 것인가?!
결국 이 Donna Lee는 대학교 진학하고 그곳에서 만난 기타 치는 친구를 만난 이후 함께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열심히 카피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드럼 부분과 베이스라인, 그리고 솔로 부분을 편곡해서 악보로 그려냈다.
아마도 축제 때 거리 공연을 하고 싶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베이스 치는 거 겁나게 멋지지 않냐?
봤지? 나 베이스로 이렇게 연주할 수 있어!!!!
솔직히 누가 알아주겠냐마는 이게 바로 허세라는 것이다!!!!
그때 Charlie Parker의 오리지널 연주도 접하게 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베이스라는 악기가 한계가 있는 악기라는 편견
결국 Jaco Pastorius는 그의 솔로 연주를 베이스로 옮겨서 연주했던 것이다.
베이스 본연의 역할보다는 솔로에 진심이었던 나는 당시 친구와 함께 신촌의 어느 가계에서 스프링철로 제본된 '리얼북'을 구입하고 -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 멜로디 라인을 베이스로 카피하기 시작했었다.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야 내가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갔겠는데????'
한 때는 그의 연주를 전부 솔로로 카피해 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뭐 생각에만 그쳤다.
그나마 카피를 했던 곡은 'Confirmation', 'Au Privave'등 몇 곡 정도인데 'Au Privave'의 경우에는 Randy Coven의 곡을 카피했었다.
기타리스트 Al Pitrelli를 좋아해서 Chris Oliver 대신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던 시절의 Savatage 같은 락밴드의 음반들을 수집했던 시기인데 그중에 Randy Coven의 이 음반도 우연히 손에 넣기도 했다.
당시에는 락밴드가 이 곡을 연주했을 거란 걸 누가 알았겠나?
그나저나 이 곡을 내 친구와 어떻게 커버했지?
기타 치는 친구는 워낙에 잘 쳤지만 나는?
그 마법은 템포를 줄이면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베이스란 악기도 일주일에 한 번 찬양단을 섬길 때 빼곤 하드케이스에 보관만 하는 신세가 되긴 했었도 내 청춘에서 Charlie Parker는 확실히 재즈를 제대로 입문하는데 큰 역할을 하긴 했다.
아마도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내 개인적인 욕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사실 재즈라는 음악 자체를 좋아했던 건 솔직히 아니었다.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외치던 그 시점에서 조차 재즈는 그저 내 음악과 연주의 수준을 높이고 싶었던 욕심에서 비롯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Charlie Parker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데 미쳐있었던 거 같다.
하다못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포레스트 휘태커가 Charlie Parker역을 했던 그 영화 <Bird>까지 찾아보면서 미쳐있었는데 이것도 허세였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아마도 허세였을 것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청춘이 아니던가!
결국 처음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았던 Charlie Parker의 음반들을 개별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박스셋 예를 들면 Savoy, Dial Session, Verve 박스셋으로 그냥 퉁치면서 그의 음반 수집은 거기서 멈췄던 거 같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감상자로 돌아서고 나서야 재즈 음악이 제대로 들렸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1950년 뉴욕에 소재한 Nicholas Arena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담고 있는 <Bird At St. Nick's>는 처음부터 음반 발매를 목적으로 한 라이브는 아니었다.
실제 이 음반의 라이너 노트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뮤지션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였던 트롬본 주자 Jimmy Knepper는 그의 열성팬으로 그의 연주를 담고 싶어 테이프 녹음기로 그 당시의 라이브를 녹음했다.
Jimmy Knepper는 이후 Charles Mingus와 오랜 기간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라이브를 Charles Mingus에게 들려줬고 결국 그의 레이블인 Debut Jazz에서 Charlie Parker 사후인 58년도에 발매되었던 음반이다.
이러니 음질이 좋을 수가 있나? 하지만 Jimmy Knepper의 이 덕질로 훌륭한 그의 연주가 담긴 작품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덕질! 그래 덕질이 중요하다. 양키 코쟁이 덕질이 세계 최고라더니....
훌륭한 연주와는 반대로 그의 삶은 술과 마약으로 찌든 삶이었다.
그 마약 때문에 공연에 매번 늦는다던가 펑크를 내기도 하고 사이드맨으로 참여할 때 연주를 완전 망치는 등 뮤지션으로서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더 최악인 것은 동료들에게도 마약을 권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 Stan Kenton이 젊은 뮤지션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죄다 마약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당시 스윙 빅 밴드/오케스트라 시절에서는 젊은 뮤지션들은 기존의 베테랑 뮤지션들을 제치고 자신의 솔로윙을 할 기회가 크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 앞에 Coleman Hawkins, Ben Webster, Lester Young, Johnny Hodges 같은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버티고 있었으니...
하지만 Charlie Parker, Dizzy Gillespie, Bud Powell 같은 천재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트리오/콰르텟/퀸텟 같은 소규모 캄보 밴드 중심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 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였다.
그중에 최선봉장이 당연 Charlie Parker와 그의 오랜 음악적 동료인 Dizzy Gillespie였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물론 패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이때 젊은 뮤지션들이 Charlie Parker를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마약까지 따라 했다는 게...
그의 추종자들도 엄청나다.
Thelonious Monk, Miles Davis, Charles Mingus 같은 시대를 앞선 많은 뮤지션들이 그를 추종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만큼 그는 악기를 떠나 당시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다.
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내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수십 개의 글을 남길 자신이 있을 정도로 그만큼 많은 일화들이 재즈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영화 <Whiplash>에서도 Charlie Parker와 당시 드러머인 Jo Jones의 일화가 여러 번 언급되기도 한다.
게다가 55년도에 죽기 직전까지 술을 찾았다고 하니....
그와 관련 에피소드는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소개를 해볼까 한다
만일 여러분이 Charlie Parker를 모른다면 재즈 좀 들었다고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말라.
아 이건 아닌가???
그래! 허세도 적당히 해야 멋이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