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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Nov 10. 2023

근본이 뭐길래~

이게 중요한 건가?

지금은 없는 거 같은데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가던 때에 우리 집에 없던 책이 하나 생겼다.


연도와 사람들의 이름이 한문으로 잔뜩 쓰여 있어서 뭔지 몰라 아버지한테 어느 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어린 나이에 한문을 알았겠나? 그냥 그림처럼 보였을 뿐!


아버지는 그런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장군님의 이름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셨던 할아버지의 이름까지 읊어주시면서 말이다.


신기하게 쳐다보며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빠. 여기에 근데 아빠 이름이랑 내 이름도 있어?"


환하게 웃으시며 아직은 없다고 하신 게 기억이 난다.


그 책은 바로 족보였던 것이다.


한 때 나는 이 족보가 왜 집에 있고 이걸 왜 아버지가 책장에 꽂아놨을까 하는 거였다.


굳이 내 조상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봤던 것이다.


내 조상이 누군지 알아서 뭐 하게? 아빠, 엄마, 내 동생들만 알면 되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뵙지도 못했으니 알아서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나?



Alfio Origlio - Ascendances (2006년 음반 Ascendances)


하지만 신기하게도 재즈를 듣다 보면 자신의 근원에 대한 부분을 음악으로 풀어가는 뮤지션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이전에 소개했던 <Iroko>에 참여한 브라질 뮤지션인 Tiganá Santana도 자신의 조상, 근본을 찾는 작업을 한다. 아프리카계의 브라질 사람으로서 그것을 음악에 녹여낸다.


또 한 명이 있는데 트럼페터 Christian Scott이다.


이제는 그 이름보다는 Christian Scott aTunde Adjuah에서 다시 Chief Xian aTunde Adjuah라는 서아프리카 계열의 이름을 사용한다.


실제로 Chief Xian aTunde Adjuah는 활동명이나 예명이 아닌 진짜 법적인 이름이다.


음악도 기존의 포스트밥에서 아프리카 토속적인 느낌의 음악을 깊게 파고든다.

이유는 자신이 아프로 아메리칸으로서의 자의식을 음악에 녹여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근원/근본이 무엇인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왜 그런 걸까?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근본/근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식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역사에 대한 문제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하는 걸까?



한 때 국내에서 프랑스 레이블인 Crystal Records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유러피안 재즈의 향취가 강하게 묻어나는 이 레이블에는 참 멋진 뮤지션들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한 명이 피아니스트 Alfio Origlio이다.


그의 연주는 '색깔이 이쁜' 느낌을 준다.


이 음반은 지금도 새벽즈음에서 한 번씩 꺼내보곤 한다.


유러피안 재즈 특유의 향취가 나면서도 그 속에 라틴, 플라멩코 같은 장르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이기도 하다.


'Ascendances'라는 단어가 조상, 가계, 상승 뭐 이런 단어라고 한다.


일렉트릭 베이스 특유의 질감과 퍼커션의 타격감이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문득 이 곡을 듣다가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음악은 잊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도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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