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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Nov 16. 2023

기교가 전부는 아니야

기교보다 중요한 것은 많다

재즈 베이시스트를 꿈꾸던 대학 시절 지인의 추천으로 난생처음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유명한 국내 재즈 베이시스트분한테 배웠는데 중간에 친구가 선교사를 꿈꾸며 모든 걸 내려놓으면서 나도 6개월 정도 배우다가 중간에 도망치듯 계획한 모든 레슨을 취소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분한테는 너무 죄송했다.


일단 존경하는 뮤지션이기도 했고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바쁘셨을 텐데 내가 모르는 코드 진행에 대해 물어보면 이론을 조합해서 쉽게 쉽게 알려주려 하시기도 하셨고 마치 엄한 선생님처럼 꾸짖기도 하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처음 그분 앞에서 어느 정도의 역량이 있는지 테스트하는 자리에서 친구와 함께 합주하면서 연주했던 몇 가지 릭 (Lick)을 연주했다. 기억으로는 재즈에서 가장 흔한 코드 진행인 II - V - I으로 진행되었던 릭으로 기억한다.


내 나름대로는 이 정도의 역량이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중간중간 쓸데없는 패싱 코드와 릭을 끼어넣기도 했는데 남들은 제법 멋지다고 했던 그 부분을 애매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던 게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마디 하셨다.


"너는 베이시스트가 되고 싶은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게다가 콘트라 베이스는 그런 식의 연주로는 멋을 부릴 수도 없고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하기 힘들어. 진짜 멋을 부리고 싶으면 그냥 일렉 베이스를 쳐."


어릴 적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나쁜 습관이 온몸에 배어 있고 박자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왜 레슨을 받으려 하느냐면서 그냥 집에서 취미로 하는 게 어떻냐는 말을 하셨다.


그때 무슨 용기가 생겼던 것일까?


그분 앞에서 쫄지 않고 한마디 했다.


전 진짜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요!!



Mark Whitfield - Harlem Nocturne (1995년 음반 7th Ave. Stroll)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할 때였다.


테너 주자 Illinois Jacquet의 1956년 음반 <Swing's The Thing>에 수록된 'Harlem Nocturne'의 베이스 라인을 통해서 선생님이 스윙과 블루스 기반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셨는데 나를 겨냥하고 선곡한 곡이기도 했다. 이 음반에 Ray Brown이 연주를 하는데 솔직히 나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스만 따로 떼서 들으면 기교 없이 중간중간 몇 개의 코드를 짚는 거 외에는 거의 루트 음만을 기준으로 5도 진행으로만 단조롭게 연주한다.

거기에 혼 섹션의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 이 곡을 나한테 던져주시곤 한마디 하셨다.


"인내심을 기르라고. 기교는 분명 음악을 하는데 중요해. 표현의 확장력을 넓히는 데 있어서 확실히 기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기본도 안 돼있는 넘이랑 누가 합주를 하고 싶어 할까? 이 곡이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 한음씩 한음씩 루트 음만 짚어서 나한테 보여줘"


거의 한 달을 이 한곡에 매진했다.


이러다 보니 처음에는 가르치기 싫으신가 생각도 들었고 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기간 내가 얻은 건 타임키핑 (Time Keeping)이었다.


그때서야 이 한곡을 바리에이션 하기 시작했다.


템포를 살짝 올린 상태에서도 타임키핑을 유지하는지 체크하고 그 사이사이 아주 간략한 코드를 넣거나 하는 식으로 타임키핑을 유지한 채로 흔들림 없이 연주가 가능하도록 말이다.


거기에서 선생님이 피아노나 드럼을 쳐주시면서 타임키핑을 통해 자신이 연주해야 할 마디와 페이스를 유지하고 다른 악기들과 어떻게 인터플레이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연주를 하다 보면 솔로도 막 하고 싶고 그렇지? 그러다 보면 음악적인 흥분을 하게 되는데 이때가 위험해. 너에게 주어진 솔로잉 타임에서 너 혼자 흥분해서 박자 다 먹어치우고 솔로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근데 이 음악적인 흥분은 말이야 나도 그렇고 모든 뮤지션들이 다 그래.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엄격해야 해. 다른 세션의 박자가 틀리는 거에 대해서는 관대할지언정 자신한테는 엄격해야 진짜 프로야. 이제야 좀 때를 벗은 거 같다. 모든 것은 기본으로부터 시작해. 네가 아무리 오랫동안 일렉 베이스를 쳤다고 해도 내 눈에 너는 이제 한발 뗀 갓난아기에 불과할 뿐이지."



만일 내가 그때 도망가지 않고 붙들고 있었으면 진짜 재즈 뮤지션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거 같다는 게 내 결론이다.


마지막 선생님이 연락한 건 프로가 되든 취미가 되었든 레슨에 나오라고 하셨다.


보통 저렇게 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게 일반적인데 포기하지 않고 한 달 동안 집요하게 따라왔던 내가 못났어도 대견하게 보이셨나 보다.


그래도 그 6개월간의 레슨에서 내가 귀중하게 배운 것은 삶의 자세에 대해서이다.


'남의 실수나 티에 대해서는 관대할지언정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말은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바보가 되기 딱 좋다.


나 자신에 대해서 엄격해도 대부분 사회에서는 나의 실수에 대해 뒷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항상 저 때를 기억하게 되고 나 자신에게 엄격하려 노력한다.


내가 실수한 부분은 분명하게 복기를 하고 고쳐나가려고 하고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욕하는 게 아니라 함께 풀어가려고 노력한다.


기타리스트 Mark Whitfield의 저 곡을 레슨 받는 기간 중에 결국 친구와 다른 멤버들과 함께 합주를 했었다.


지금에 와서야 20년도 더 된 추억이긴 하지만 음악도 그렇고 내가 속한 IT에서도 저 이론은 막강하게 작동한다.


코딩을 잘하는 기교는 경험상 5년 넘게 IT밥을 먹으면 대부분 비슷해진다.


10년 차와 5년 차의 코드가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기교 가득한 코드를 완성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고 운영하고 장애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과 그것을 내 경험으로 내재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비스를 담당하는 개발자들이라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기교보다 중요한 건 많다.
기본에 충실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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