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꽤나 아시는 분이시라면 이 제목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니 뭐야? 당연히 George Benson은 기타리스트지!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처음에 그가 가수인 줄 알았다.
1987년 영화 <Bagdad Cafe>에는 굉장히 유명한 주제곡이 하나 있다.
바로 Jevetta Steele이 부른 'Calling You'이다.
워낙에 유명한 이 곡을 라디오에서 자주 듣곤 했는데 어느 날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다른 버전의 곡을 틀어준 게 바로 George Benson의 'Calling You'였다.
1993년 음반 <Love Remembers>의 맨 마지막 수록곡인데 당시만 해도 George Benson을 몰랐었다.
그냥 그때는 Luther Vandross 같은 류의 알앤비 가수라고 생각을 했지 그가 기타리스트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훗날 대학교 들어가고 만난 기타 치는 친구와 어느 날 음악 얘기하다가 그때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한참의 논쟁을 하다 그 친구가 꺼내 든 <Love Remembers>나 다른 그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원래 그는 제2의 Wes Montgomery를 잇는 재즈 기타리스트라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George Benson이 재즈 기타리스트였어???
사실 제목을 이렇게 정하긴 했지만 이런 인물들이 재즈씬에 몇 분 계신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분들, 그러니깐 Nat King Cole, Louis Armstrong, George Benson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90년대 초반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곡이 하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Unforgettable'이라는 노래였다.
Nat King Cole의 딸이자 가수인 Natalie Cole이 생전에 아버지가 부른 곡을 오버더빙하면서 아버지와 딸의 듀엣이라는 콘셉트로 이슈를 끌었던 곡으로 당시에 나는 Nat King Cole이 가수라고 생각했다.
이때 인순이도 불렀던 'L-O-V-E'라는 곡도 잘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재즈를 알아가던 시기에 Nat King Cole이 얼마나 대단한 피아니스트였는지 알게 되면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실제로 Nat King Cole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에는 당대의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추앙받던 엄청난 실력파 피아니스트였다.
Bill Evans, Oscar Peterson, Bud Powell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감이 올까 싶다.
하지만 대중 매체에서는 그를 단지 가수로만 소개하는 기사들이나 내용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를 알게 되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Nat King Cole이 재즈 피아니스트였어???
Louis Armstrong은 또 어떤가?
광고에도 많이 나오기도 했던 'What A Wonderful World'로 기억되었던 이 뮤지션 역시 재즈를 알아가면서 스윙에서 비밥으로 넘어오는 그 시기 재즈씬을 흔들었던 혁명적인 트럼페터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먹기도 했다.
Charlie Parker등장 이전에 재즈씬을 평가하면 그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평가를 받는 그의 연주는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재즈의 트럼펫의 모든 것을 완성한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Louis Armstrong이 재즈 트럼페터였어???
하지만 이 둘과 George Benson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Louis Armstrong은 당시 시대 상황과 좀 맞물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프로모터들의 횡포였다.
이런 이유로 흥행과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치모 - Louis Armstrong의 별명 - 는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하던 조 글레이저 (재즈 역사를 보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인물)라는 인물을 매니저로 두기 시작했다.
조 글레이저가 공평하게 공연 수입을 나눠주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Louis Armstrong은 트럼펫 연주를 하는데 상당한 피곤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좀 많긴 한데 마약과 좀 관련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러하니 조 글레이저는 그러면 차라리 가수, 엔터테이너로 활약하는 것이 어떻겠냐라며 거의 반 강제적인 제안을 하면서 트럼펫 연주보다는 노래에 좀 더 치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치모가 동의했으니 그 이후로는 잘 알려진 대로 노래에 좀 더 집중하고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눈알 굴리기라든가 포퍼먼스를 보여주며 여러 버라이어티 쇼나 미디어 매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흥행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결국 사치모가 연예인이 되는 것에 동의를 했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와 여러 상황의 맞물리면서 자의적이라기보다는 거의 타의적인 이유가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Nat King Cole은 어떠했는가?
그가 피아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30년대에 그는 가끔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일종의 홍보 같은 역할을 한 것인데 그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어필을 했다.
당시만 해도 백인은 크루너라고 하고 흑인 싱어들은 블루스 가수라고 불려졌다.
이유는 보이스 색깔 때문인 듯 싶은데 Jimmy Witherspoon 같은 싱어들은 블루스, Jump Blues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Nat King Cole의 음색은 그들과 다르게 크루너에 가까운 굉장히 감미로운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자료나 에피소드 관련해서 그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이유 역시 경제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George Benson은 이들과는 다르게 본인 자신이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희망했다.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이트클럽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George Benson은 오르간 주자 Jack McDuff밴드에 합류를 하면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Lou Donaldson이나 Stanley Turrentine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의 사이드맨 활동과 자신의 리더작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을 때 Miles Davis의 1968년 음반 <Miles In The Sky>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의 연주가 맘에 들었던 Miles Davis가 자신의 밴드에 합류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매니저와 그는 더 큰 성공을 하고 싶어 했고 결국 그 제안을 거절한다.
실제로 이 연도를 기점으로 연주로만 구성된 음반을 발매하다가 Nat King Cole을 롤모델로 삼기 시작한다.
<Goodies>, <Tell It Like Is> 같은 음반에서 한 곡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기타리스트로서의 리더작도 충실히 발매를 해 왔지만 <Breezin'>의 성공, 특히 'This Masquerade'가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Whitney Houston의 곡으로 대중적으로 더 잘 알려진 'The Greatest Love Of All'는 원래 George Benson이 싱글로 가장 먼저 녹음한 곡이다.
이 곡이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다루는 영화에 수록된 곡으로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직의 대표적인 뮤지션이자 작곡가인 Michael Masser의 곡이다.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도 Michael Masser의 곡으로 George Benson이 먼저 부른 곡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직이라는 것은 백인들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당시에 팽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Whitney Houston의 초기 음반인 1985년 데뷔작인 <Whitney Houston>와 1987년 두 번째 정규작인 <Whitney>은 대부분이 Michael Masser 같은 당시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지션들의 곡들로 이뤄진 작품이다.
1집과 2집에 수록된 히트곡 'Saving All My Love For You', 'Didn't We Almost Have It All'가 Michael Masser의 곡이다.
신효범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 장담컨대 100프로 'Didn't We Almost Have It All' 표절곡이다.
악기 구성부터 모든 것이 그냥 표절이다.
이 작품들은 엄청난 성공을 했지만 George Benson을 비롯해 Whitney Houston은 백인 음악한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Whitney Houston는 이후 Babyface 같은 흑인 뮤지션들의 곡을 통해 뉴잭스윙 같은 흑인 뮤직을 담아낸 <I'm Your Baby Tonight>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록 흥행은 전작에 비해 부족해도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이때 받기 시작했고 George Benson 역시 Quincy Jones를 만나 발표한 <Give Me The Night>를 통해 이런 평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20/20>, <Twice The Love>, <In Your Eyes>등 가수로서 적극적으로 발표하며 가수로도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Giblet Gravy>, <That's Right>와 함께 최고로 꼽는 음반 중 하나가 <Irreplaceable>이다.
'Black Rose'와 함께 'Six Play'는 정말 멋지지 않은가!
George Benson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뭐 재즈 기타리스트이면서도 노래 잘하는 가수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지 않을까?
2013년에 발표한 <Inspiration: A Tribute To Nat King Cole>을 통해서 당당히 표현하기도 했으니깐!
어재든 Geroge Benson은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건 확실하고 지금도 기타리스트로서의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수인 줄 아는 Nat King Cole, Louis Armstrong을 비롯해 George Benson이 훌륭한 가수이면서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허세를 부릴 수 있다고 본다.
술자리나 또는 어떤 대화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면 좀 더 정확한 정보로 아는 척, 허세 한번 부려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