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이야기들로 채워진 그들의 삶
표지의 사진을 보면 뭔가 분위기가 유쾌 발랄하지 않은가?
아무리 봐도 오른쪽 남자는 분명 백인이고 왼쪽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 속된 말로 똘아이 -인 Charlie Parker이다.
이와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풀어보면 저 오른쪽 남자는 바로 Red Rodney라는 트럼페터이다.
Dizzy Gillespie가 Charlie Parker에게 소개해주면서 알게 된 인연으로 원래 스윙스타일의 연주를 선보였던 Red Rodney는 비밥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전 Charlie Parker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소개한 <Bird At St. Nick's>에도 참여한 뮤지션이다.
근데 재미있는 건 그 음반에 보면 저 뮤지션의 이름에 "Albino" Red Rodney로 소개가 되어 있다.
알비노가 뭔지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백색증이라고 해서 멜라닌 색소가 합성되지 않는 질병인데 저 이름이 떡하니 붙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Charlie Parker가 붙여준 것이다.
4,50년대는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같이 공연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Charlie Parker는 이 Red Rodney를 음악적 동료로서 상당히 맘에 들어했고 남부 공연 때 그가 알비노에 걸린 흑인이라면서 붙여준 별명이다.
어쨌든 실력이 없었다면 과연 Charlie Parker가 저런 말도 안 되는 별명을 붙여가면서 데리고 다녔을까?
그만큼 실력이 되지만 당시 인종차별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로 한번 넘어가 보자.
우리에게 블랙팬서로 기억되는 故 채드윅 보즈먼과 해리슨 포드가 주연으로 참여한 2013년 영화 <42>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시기에는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역시 흑인과 백인이 함께 경기를 뛰지 못했다.
야구의 경우에는 Nigro League가 따로 있을 정도였는데 이 영화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Jack Roosevelt "Jackie" Robinson, 잭키 로빈슨과 그를 메이저리그로 이끈 Wesley Branch Rickey, 브랜치 리키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를 보면 위 Charlie Parker 에피소드 역시 그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iles Davis가 Charlie Parker의 만행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말년에 그를 버리면서 Charles Mingus와 싸우긴 했지만 그에게 받은 영향은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외계인이든 연주만 잘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당시에는 인종차별도 인종차별이지만 흑인들도 재즈는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뮤지션들과 평론가들이 많았다.
그래서 트럼페터 Joe Gordon이 백인 드러머인 Shelly Mann 밴드에 들어갔을 때 반응이 이랬다고 한다.
아니! 흰둥이 밴드에서 연주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게다가 Miles Davis가 49년과 50년에 Nonet 구성의 녹음과 라이브를 할 때 백인 뮤지션인 Lee Konitz, Gerry Mulligan, Gil Evans, Al Haig를 고용했을 때 인터뷰에서도 이런 반응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흰둥이를 고용했다고?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So What'처럼 쿨하게 대답한다.
"그럼 그렇게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를 내게 데리고 와봐!!!!"
이때 녹음된 12곡의 트랙과 그 외에 라이브 음원을 담은 'Birth Of The Cool'으로 발매되면서 당시 재즈씬에 많은 변화를 주기도 했다.
Dizzy Gillespie의 자서전에 수록된 내용 중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짧게 소개하자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면서 더 이상 흑인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드러머 Kenny Clarke가 내게 와서는,
"이봐! 깜둥이! 난 더 이상 깜둥이가 아니야! W! 보라고 난 백인이라고"
그러면서 아이디카드를 보여줬는데 거기에 Liaquat Ali Salaam, '리아캇 알리 살람'이라는 이름이 기입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 내용은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당시 아이디카드에 W를 기입해 흑인/백인을 나눴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 내용은 그만큼 40년대 이후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그에 대한 일종의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제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유는 그런 이유보다는 그 시기에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백인의 종교라고 치부되던 '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반발 심리가 작용했다고 보는 관점이 더 크다.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단지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졌는데 여러분들이 많이 아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Nation Of Islam, 줄여서 NOI라고 부르는 단체로부터 이런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이 단체에 초기에 말콤 엑스가 있었고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이 이런 이유로 다른 노선의 인권 운동을 펼치게 된다.
Abdullah Ibrahim의 원래 이름은 Adolph Johannes Brand로 초기에는 Dollar라는 예명을 사용한 Dollar Bran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거장 피아니스트이다.
어떤 종교를 갖든 그건 자유이다.
물론 모든 뮤지션들이 위와 같은 이유로 개종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Art Blakey, Ahmad Jamal을 꼽을 수 있겠는데 그중 Art Blakey의 경우에는 아프리카 여행 이후 개종했다.
대부분 그의 작품들이 Art Blakey로 발표돼서 이게 그의 본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실제 그의 본명은 개명한 이름인 Abdullah Ibn Buhaina, 즉 '압둘라 이븐 부하이나'가 그의 본명이다.
어쨌든 진짜 그 종교에 영향을 받아 개종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개종의 이유는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인종 차별이라는 슬픈 역사의 흔적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당시 스윙 재즈 시절부터 비밥의 시대를 관통하던 그 시기에 백인들은 그렇게 인종 차별을 했던 흑인 뮤지션들의 연주를 소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는 또 어떠했는가?
후기 활동은 그렇다 쳐도 초기 그는 당시 백인들이 저급한 흑인 음악이라고 치부했던 Rock 'N' Roll을 가져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Blue-eyed Soul이라고 해서 백인들이 흑인 소울 창법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Michael Bolton을 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그랬다.
어떤 주제로 30분을 떠들 수 있는 지식이면 충분히 허세를 부릴 수 있다고 했다.
여러분들도 술자리나 어떤 특별한 자리에서 이런 주제가 나온다면 유쾌하게 30분간 떠들어 볼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해서 허세를 부려보자.
거기에 좀 있어 보이게 재즈 뮤지션들의 삶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