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오후 3시
그날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친구들이랑 어디서 술 한잔 할까 고민하면서 나오려고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학교의 교정에는 비 오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
틴들 현상이라고 하던가?
마치 손전등을 하늘에서 학교 교정으로 비추는 듯한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가 온다는 사실에 분주하게 움직일 뿐 내 눈동자에는 마치 각인되듯 그 장면이 자꾸 나를 끌어드린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 멍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저기요. 사람들 많이 다니는 입구인데 옆으로 좀 비켜주세요!"
사과를 하고 옆으로 나와 그 모습을 마치 눈에 담고 싶은 듯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비가 수그러들더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다시 화창해졌다.
너무 넋을 잃고 봐서 그런 걸까?
전화도 여러 번 왔었다.
문자를 확인하니 전화를 안 받아서 친구들은 이미 혜화동으로 출발했다고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혜화동으로 이동한다.
길 위에는 비가 온 흔적이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걷는 그 길위에 시간의 흔적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