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또복이가 알려주는 것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거. 시간이 다 되면 죽는다는 것. 시간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임을 배워 안다. 배워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체감이 안된다.
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다투고 하는 것은 바로바로 안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 시간이라는 것이 유한하다는 것은 잊고 살기 쉽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게 당장 나의 삶에 큰 영향이 있지 않은 이유다.
벌써 일 년의 반 이상이 흘렀다. 덧없이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남은 한 해를 좀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한다. 작심 3일이 되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쪼개 쓸 결심을 한다. 시간은 평등하지만 주워 담을 수 없고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것임을 지난 후에라야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내 옆에 ‘또복이’가 엎드려 있다. 또복이는 매 순간 내 옆에 있으려고 한다. 먹을 게 있거나 고양이 같은 흥밋거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나와 함께 하려 한다. 나를 좋아하고 나도 녀석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개의 시간은 사람의 그것보다 7~8배 빠르게 흐른다고 한다. 한두 시간의 외출이면 강아지에게는 거진 하루의 시간이 흘러가는 셈이다. 심드렁하게 누워 있는 또복이를 보거나 나가 놀자고, 산책하자고 눈망울을 그렁그렁하는 녀석을 볼 때면 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평소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또복이는 지금 5년 하고도 10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30킬로그램이 훌쩍 넘어가는 대형견이라 또복이의 기대수명은 10년 남짓, 나의 바람을 잔뜩 넣어본다면 12-3년쯤이면 싶다. 그렇다면 또복이는 지금 견생의 전반기를 마무리해 가고 있는 셈이다. 작은 몸짓에 핼쑥한 얼굴로 내 집을 찾았던 꼬꼬마가 어느새 성견이 되어 견생의 중간 어디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DNA에 깊이 새겨지지 않은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개념을 각인시켜 주는 또복이 때문에 오늘 하루가 소중함을 매일 느끼게 된다. 인간의 삶에 비해 얼마 남지 않았을 '또복이의 시간'은 강아지의 시간으로만 남지 않고 인간의 시간으로까지 확장된다. 그 '짧음'이라는 한정된 시간 개념이 나의 어머니, 나의 장모님, 내 아내, 내 형제로까지 이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들의 시계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의 경우, 같이 얼굴 보고 밥 먹을 수 있는 횟수로 치면 이제 수십 번의 기회 만이 있을 것이고 매주 안부 전화를 드린다고 해도 수 백 번의 순간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잘 지내고 계시겠지', '아무 소식 없는 게 희소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위안을 하며 '시간의 유한성'을 오늘도 무시하며 살고 있는 나를 본다.
여전히 또복이는 내 옆에 엎드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또복이와 짧게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설령 그 목소리가 어제와 같은 목소리일지라도, '밥은 잘 챙겨 먹지?' '어디 몸 아픈 곳은 없고?'라는 상투적인 대화가 오갈지라도 말이다. 매일매일 또복이가 알려주는 시간의 유한성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 하루도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에 관심을 가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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