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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참지않긔'

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by 퍼니제주 김철휘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또복이에게 평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기다려"다. 간식 줄 때 바로 주지 않고 "기다려" 한다. 가게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가는 또복이에게 역시 "기다려" 한다. 산책 나가기 전, 리드 줄을 챙길 때도 "기다려". 산책하다 동네 개를 만나도, 아이들을 만나도 일단 "기다려"라고 이야기한다. 또복이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개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데 일단 ‘기다려’ 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러는 데는 또복이가 다칠까 봐, 또복이가 나쁜 습관을 가질까 봐 하는 마음이 크다. 또복이를 위해서도 하는 말이지만, 내가 "기다려"라고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또복이의 덩치 때문에 작은 강아지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또복이가 귀엽다고 또복이를 만지고 쓰다듬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기다리세요"라고 하지 못한다. 역시나 상대방이 서운해할까 봐 상대방이 당황해할까 봐 하는 이유 때문이다.



나도 싫어하는 게 있다고



보통 또복이는 사람들의 손길을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고 조금 익숙해지면 엉덩이를 들이밀고 등을 내어 준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워지면 아예 배를 만져달라고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또복이도 싫은 때가 있다. 정해진 패턴은 없지만 왠지 싫은 사람이 다가오면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을 친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를 만지려고 다가오면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다가오는 사람에게 "기다리세요", "그만하세요"를 외치지 못한다. 마냥 또복이가 ‘참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내가 운영하는 '보기도기' 매장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강아지들도 마찬가지다. 열에 한 둘은 또복이도 낯설고 두려워하는 개가 찾아온다. 그러면 또복이는 인사하기 위해 달려가지 않고 얼음이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을 주어도 그 개의 눈치를 살피며 에둘러서 나에게 오는 것이다. 너무나도 싫어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매장에 온 손님과 그의 반려견이라 어떻게 해서든지 또복이와 친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복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데 말이다.


그렇게 나의 욕심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간혹 경미한 사고가 발생한다. 상대개가 또복이에게 입질을 하거나 갑자기 올라타 또복이가 넘어지곤 하는 것이다. 한눈에 봐도 사회화가 잘 안 된, 버릇없는 녀석이다. 그렇게 깡패 같은 녀석들인데도 또복이는 그런 불한당 같은 행동들을 다 받아준다.



내가 바라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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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는 "황금률"이라는 게 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거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쏟아내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도 무차별적인 언어폭력, 버릇없는 태도, 안하무인의 인격모독을 계속 받아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못하는 것을 또복이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정착 또복이가 좋아하는 건 “기다려”라며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또복이라고 해서 늘 사람의 손길이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삶에 불쑥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또복이도 예의 없게 머리를 '툭툭'치거나 꼬리를 잡아당기고, 보자마자 '손!' 하면서 명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몰티즈는 참지 않긔


몰티즈는 참지않기.jpg 몰티즈는 참지않긔 (출처 instagram: @no_easy_world)


몰티즈는 참지 않긔’라는 말로 검색하면 순진 무구한 얼굴로 재롱을 부리던 몰티즈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성깔을 부리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5 킬로그램의 작은 강아지도 맘에 안 들면 저렇게 성깔을 부릴 수 있다니...


거침없이 화를 내는 '몰티즈' 영상을 보다 보니 웬만하면 참고 견디는 또복이가 오버랩된다. 또복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불만이 뭐니?", "네가 싫어하는 게 어떤 거야?" 물어보련만...,


순간,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존 그로건(John Grogan)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짧고 작은 생명인 반려동물이 우리와 함께 살면서 놀랄만치 많은 웃음과 사랑을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게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매일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 존 그로건(John Grogan)



그렇다. 우리 강아지, 우리 반려견들은 그들의 짧은 삶의 대부분을 기다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우리 강아지들에게 계속 "기다려"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나도 이제 또복이에게 “기다려”라는 말을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기다리고 참아왔던 또복이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또 복아~이제 너무 참지 않기, 너무 기다리지 않기, 너무 받아주지 않기로 하자. 네가 좀 더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게 이제 내가 너를 기다릴게~"



‘또복이도 이제 참지 않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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