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복이는 고양이를 엄청 좋아한다. 산책 중 상당 부분은 고양이 냄새를 쫓는 것에 할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접근하면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민감한 코를 유지하지 위해 연신 긴 혓바닥을 놀려 코를 핥는다.
이리저리 고양이 냄새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또복이가 갑자기 "꿀! 꿀! 꿀!" 돼지 소리를 낸다. 윤기 나는 콧구멍을 땅바닥에 밀착시키고 범인 쫓는 베테랑 수사관처럼 주변을 샅샅이 뒤질 때 나는 소리다. 그렇게 사라진 고양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면 녀석의 혈관 속엔 분명 사냥개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고양이들은 또복이보다 몸이 날쌔다. 그리고 또복이만큼 후각이 발달해 있다. 또복이가 나타나기 전부터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저 멀리 달아나 있는 상태다. 담벼락이나 바위 뒤에서 숨어 닌자처럼 두 눈만 내놓고 또복이의 동태를 살피는 모양새가 살짝 얄밉다. 고양이들이 이미 숨은 것도 모르는 또복이는 사라져 버린 이들의 냄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빙빙 돈다.
그렇게 매번 고양이와의 근접 조우에 실패하는 또복이지만 가끔은 발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고양이에게 다가갈 때도 있다. 그 순간은 그야말로 우연처럼 다가오곤 하는 데, 후미진 풀숲이나 골목길 어귀와 같이 구석진 곳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두 상극 간의 만남은 또복이가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새끼 고양이와 잠깐 마실 나온 어미 고양이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못 식상하고 심심했던 산책길. 그 길 위에서 만난 빅 찬스를 놓칠 일 없는 또복이는 느슨해져 있던 목줄을 세차게 당긴다. 나도 낯선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출몰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또복이의 돌발 행동에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간다. ‘앗!’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또복이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도록 리드 줄을 강하게 부여잡는다. 다행히 재빠른 순발력으로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또복이는 분한 표정이다. 그렇게 고양이와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상태에 들어가게 된 또복이.
"대치상태라고요? 이미 고양이는 혼비백산 도망가지 않았나요?"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지가 않다. 도망은커녕 고양이는 등을 둥글게 말고 최대한 몸을 부풀려 또복이를 향해 앙칼진 소리로 위협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복이를 보면 알겠지만 녀석은 34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상급 대형견이다. 그런 또복이에게 조막만 한 고양이가 줄행랑을 쳐도 모자랄 판에 가드를 잔뜩 올리고 맞받아칠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흡사 이소룡이 본인의 특기인 '절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사실 그 작은 고양이는 도망갈 수가 없었다. 왜냐 그녀는 새끼 고양이가 셋이나 딸린 어미 고양이었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그 위기감이 모성본능을 자극했고 위대한 어머니의 힘이 자기 보다 10배는 커다란 적을 향해 돌진하게 만들었던 거였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고양이의 기세에 기가 눌렸는지 정신없이 돌진하던 또복이가 멈칫 한다. 녀석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눈치다. 하지만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또복이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주인이 강하게 줄을 당기고 있는데도 계속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또복이. 바로 그때, 웅크리고 노려보고만 있던 고양이가 상체를 세워 전광석화와 같이 또복이를 향해 쌍 싸다구를 날린다.
정말이지 고양이의 앞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싸다구를 맞은 또복이는 순간 뒷걸음질 치며 '깨갱'한다. 너무 놀라 나 또한 또복이를 강하게 뒤로 끌며 다른 골목 쪽으로 또복이를 피신시켰다. 분한 건지 놀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아쉬워하는 건지 모르게 또복이는 연신 고양이를 쳐다보며 미련을 거두지 못했다.
집에 와서 보니 또복이의 오른쪽 눈 위, 눈썹이 있을 자리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아까 고양이의 싸다구로 인한 피해다. 심하지 않은 정도의 상처였지만 날카로운 발톱이 안구에라도 스쳤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다급하게 일어난 일이라 사건을 막을 순 없었지만 새끼 고양이와 함께 있는 어미 고양이를 만났을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고양이의 그 눈빛이 떠오른다. 결기에 찬 그 눈빛, 여기서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와닿는 그런 눈빛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지키고 싶은 존재 앞에서는 그렇게도 강해지는가 보다. 물론 나 역시도 사랑하는 또복이에게 위험이 닥치며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도 고양이를 보고 흥분해서 침을 질질 흘리는 또복이를 보면 '고양이를 한 마리 같이 키워야 하는 건가?' 물음표가 자꾸 그려진다.
"아이고 또복아, 그러다가 왼쪽 눈 위에도 짱구 눈썹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