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보기도기'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접하게 된다. 친절하게도 먹을 것을 건네며 행복하게 아침 인사를 하는 사람. 또복이가 너무 귀엽다며 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사주는 사람. 조용히 혼자 구석진 자리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하다.
반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도 많다. 음료를 마시는 것도, 반려 용품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강아지를 데려와 놀게 하고 그냥 가는 사람. 본인의 강아지는 '마킹' 안 한다며 '매너 벨트'도 없이 들어와 오줌 자국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 안 보는 틈을 타 건물 옆에 은근슬쩍 강아지똥을 버리고 가는 사람 등등,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더 이상 우리 매장에 오지 않았으면 싶다. 설령 매장 상품을 많이 구매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슬픈 현실은 소매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피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악덕 고객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권리, 보기 싫은 고객의 황당한 질문에 답하지 않을 권리, 무례한 행동에 싫은 내색을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아니 있지만 행사할 수가 없다. 후한이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기적인 되라고 한다. 아픈 손가락을 내밀면 사람들이 오히려 그 손가락을 찌를 거라고 한다. 약점을 감추고 당당해지라고 한다. 세상은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하기에도 짧다고 한다. 그러니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이야기한다. 100 사람 중 51명만 나를 지지해 주고 나머지 49명이 나를 반대해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이야기다.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나르시시스트'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는 이러한 방법들은 한편으로 유용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상처받는 일도 많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접하게 되니 나 또한 보호막을 치고 나와 맞지 않을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할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줄 것 같은 사람들을 선별하고 골라 만나게 된다. 우연히 싫은 사람과의 만남이 이어지더라도 그 만남이 지속되지 않게 은근슬쩍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카테고리별로 관리하곤 한다. 분류의 기준은 나의 기억과 나의 경험과 나의 선입견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나누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자못 관상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정보와 얼굴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생각을 알아맞히려고 하는 데, 이게 종종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도 나의 세상이 점점 더 좁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나누고 구분하고 분류하고 금지선을 칠수록 내 삶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
반면 또복이는 선입견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어떤 개가 오던지 일단 꼬리를 치고 반긴다. 상대개가 당황하지 않게 먼저 자신의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자기도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상대개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성질머리가 나쁜 개라면 간혹 '으르렁' 거릴 때도 있다. 물론 자신에게 ‘입질’하려고 하는 개가 있다면 일정 시간 동안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먼저 다가가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대개가 계속 성질을 낸다면 또복이도 하는 수없이 자기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씹던 개껌을 씹던지 드러누워 쉬던지 그런다.
얼마 후 그 개가 다시 매장에 들어온다. 그럼 또복이는 마치 처음 만난 강아지처럼 또 반긴다. 그럴 때면 또복이가 건망증을 넘어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간혹 나 또한 또복이에게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릴 때가 있다. 차로변에서 갑자기 '리드 줄'을 당겨 위험한 상황이 되었을 때, 비 오는 날 진흙 발로 집안에 들어와 여기저기 발 도장을 남겼을 때가 그렇다. 사실 또복이에게 잘못은 없다. 그저 본능대로 행동한 것뿐이다. 그래도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또복이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럼 또복이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주인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한 또복이는 슬금슬금 숨을 곳을 찾아 구석진 자리로 몸을 피한다. 또복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 황당하고 답답한 마음일 것이다. 방금까지 "착하다 착하다" 하던 주인이란 작자가 갑자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 보고 있으니 '이런 조울증 환자가 있나'라며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또복이의 '억울한(?) 시간'은 길게 흐르지 않는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또복이는 어느새 내 발 옆에 앉아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그 해맑은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한 번 상처받은 일에 쉽게 마음을 풀지 못하는 나를 생각한다. 언짢은 일, 성질나는 일, 서운한 일, 답답한 일들을 빨리 떨쳐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을 나누고 분류하고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도 역시나 마음에 걸린다. 아~ 나도 또복이처럼 좀 더 순수해질 수는 없을까, 바로바로 잊어버릴 수는 없을까? 부딪히고 부대끼고 얽히고설켜도 훌훌 떨고 웃을 수는 없을까?
“ 또복이 어떻게 하는 거니? 나에게도 비법 좀 알려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