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9화
또복이는 셜록 홈즈다. 집 안 곳곳을 탐색하며, 내가 하는 모든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녀석의 탐정 모드가 특히 빛을 발하는 순간은 내가 부엌으로 향할 때다. 드러누워 있는 녀석의 귀가 내 쪽으로 향해 있다. 눈동자 또한 곁눈질로 나의 동태를 살핀다. 이미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나도 알고 녀석도 안다.
녀석의 귀는 미세한 소리에도 즉각 반응한다. “바스락” 소리와 동시에 그의 머리가 번개처럼 내 쪽을 향한다. 순간 그의 눈동자는 “그거지? 내가 좋아하는 거?”라는 질문을 던진다.
신기하게도 또복이는 비닐소리를 구별한다. 야채나 과일을 담는 얇은 검정 비닐 봉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새우깡'처럼 인간이 먹는, 안쪽이 은색인 과자봉지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오직 좋아하는 간식 비닐 소리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 소리가 나면 방금까지 깊은 잠을 자던(또는 자는 척하던) 녀석이 손살 같이 부엌 쪽으로 달려온다. 영화 ‘여고괴담’의 유명한 점프컷처럼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간식 봉지 속에 오이를 숨겨놓는다. 그리고 달려온 또복이에게 오이 한 조각을 꺼내 보여준다. 그러면 생기발랄했던 얼굴에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낀다. 신나게 흔들던 꼬리도 쳐지고, 쫑긋했던 귀도 아래로 떨궈진다. 폐잔병처럼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또복이를 보면, 마치 내게 "에휴, 장난하냐? 장난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또복이의 관찰력이 진정 빛을 발하는 순간은 산책할 때다. 특히 고양이나 새를 쫓을 때의 모습이란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형사 ‘자베르’를 연상시킨다.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매우 꼼꼼하게 냄새를 맡는다. 가까운 거리 안의 냄새를 탐색하다가 바람을 타고 새로운 단서가 날아들면 돌담에 앞발을 지지하고는 최대한 몸을 위로 일으켜세우며 멀리까지 냄새의 근원지를 탐색한다. 그러고는 기어코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소굴을 찾아내고는 고양이들과 한바탕 추격전을 벌인다.
나는 또복이가 꽤나 내 성향을 닮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세심한 관찰력 만큼은 많이 다른 듯 하다. 사실 난 일을 할 때, 디테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에 관심이 많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도 직관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또복이가 하는 것처럼 세세한 데이터를 모아 이를 활용해 의사결정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더더욱 또복이가 보여주는 이런 세심한 관찰력이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느낀다.
나는 또복이처럼 주변의 작은 변화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바쁘게 살아가면서 종종 중요한 순간을 놓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내가 하는 말 속에서 중요한 감정을 놓치기도 하고, 지인들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할 때도 많다. 제주에 살고 있지만 제주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리나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물론 또복이가 하는 것처럼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잠시 달리던 시계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또복이를 보면서, 삶이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작은 순간들을 즐기고 관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복이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또복이는 내게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해주는 친구같기도 하다.
"알았어 또복아~ 이제 좀더 "눈 반짝!" "귀 쫑긋!" "코 킁킁!"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