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8화
또복이는 여느 강아지처럼 아빠와 하는 '터그놀이'를 애정한다. 헝겊인형을 물고 강하게 댕기면서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대는 또복이를 보고 있으면 야수의 본성 같은 게 느껴진다. '래브라도 레트리버'와 '진돗개'의 피가 흐르는 또복이는 이럴 땐 영락없는 '진도견'이다.
앙다문 송곳니 위로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사르는 또복이. 순둥이의 가슴에도 잠자고 있는 마초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한 마음이 된다.
그런 또복이가 다른 개와 터그놀이를 할 때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인다. 초반에는 인형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물고 당기고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스스로 인형을 포기하는 거다. 아빠랑 놀 때 보여주었던 용맹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패전한 장수처럼 맥 빠진 모습이다. 그런 또복이를 보면 또한 적잖이 실망감이 피워 오른다.
“끝까지 뺏어 또복아! 끝까지~”
내 맘속의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복이는 애정하는 헝겊인형을 상대 개에게 순순히 내어준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평온한 상태가 되어 내 옆에 앉는다. 다른 강아지와 놀 때는 매번 이런 식이다.
사실 또복이는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다. 5년 남짓의 견생동안 다른 강아지와 전혀 분쟁이 없던 아이였다. 동네 싸움쟁이, '진돌이'와 마주쳤을 때도 무탈하게 서로 인사하며 지나가는 게 또복이다. 먹을 것도 양보하고 성질내는 개가 있으면 얼굴 주변을 핥아주면서 진정시킨다. 특히나 싸움 직전에 있는 두 강아지를 발견하면 은근하게 두 개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폭탄이 폭발하기 전 심지를 꺼버리는 중재자의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사실 좋아하는 장난감을 포기하는 것. 먹던 밥그릇도 다른 강아지와 공유하는 것 등 모두 또복이가 소심하고 연약한 강아지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또복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험난한 이 세상에 또복이가 혼자 떨어져 살았다면 어떠했을까도 상상을 해본다. 십중 팔구 치열한 먹이사슬의 끝단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과 돈을 위해 경쟁을 권하는 자본주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가 또한 또복이다. 나는 또복이가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복이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더 큰 것을 얻는 개다. 그래서 또복이는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빛이 난다.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띈다는 것이 아니다(또복이는 34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강아지다). 그의 온화한 성격과 따뜻한 배려가 또복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처음 또복이의 엄청난 몸 집에 놀란 사람들도 잠깐이면 또복이의 매력에 푹 빠진다. 특히 깊고 깊은 그 갈색의 눈망울을 보면 헤어지고 나서도 생각이 난다고 한다.
세상은 쉽게 포기하면 '루저'라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더 큰 의미와 행복이 뒤따른다면 쥐었던 손을 펴는 게 더 현명할 때도 있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건, 성공 만을 위해 내달릴수록 바라던 삶의 목적과 행복은 더 멀리 달아나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또복이는 '지는 게 이기는 것',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현명한 내 강아지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부드러운 것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