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06화
아침에 알람 때문에 눈을 뜬다. 자발적인 일어남은 아니다. 매일 아침 무언가 내 손을 앞으로 당겨 일으켜 세우고 등을 떠밀어 올리는 기분으로 침대와 작별을 고한다. 개운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해 보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역시나 피곤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란 이렇게 불가능한 걸까?'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복이'는 언제나처럼 해맑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훨씬 전부터 또복이는 침대 곁에 엎드려 나의 기상을 기다린다. '부스럭부스럭' 좀비처럼 일어나고 있던 나를 또복이가 발견한다. 녀석 또한 엎드려 있던 자세을 일으켜 세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또복이의 기상 루틴은 언제나 같다. 일어나자마자 앞다리를 앞으로 쭈욱 빼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우며 기지개를 켠다. 요가자세에도 이런 '개'자세가 있다는 데 유명한 요가강사도 또복이를 그대로 흉내내기는 어렵지 싶다. 언젠가 나도 한 번 녀석을 따라 비슷한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쉽게 되는 자세가 아니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끝낸 또복이는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앉아 턱을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부럽게도 충분히 자고 난 얼굴이다. 개들은 선잠을 잔다고 하는 데 또복이는 매번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 어쩔 때는 한두 시간 미동도 하지 않고 자는 경우도 많다.
암튼 잘 자고 난 또복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얼른 산책 가자고 신호를 보낸다.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하루인데 또복이는 어떻게 이다지도 즐겁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마치 '단기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어제 일을 모두 잃어버리는 듯하다. 그래서 녀석은 매일매일이 새로운가 보다. 매일매일이 궁금한가 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단기기억상실은 아닌 것 같다. 고양이와 마주쳤던 장소는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그 장소 앞 대략 50m 되는 곳에서부터 줄을 당기며 못 가서 안달이다. 맛있는 것도 잘 기억한다. 유제품과 관련된 것은 그 포장의 모양, 열었을 때의 냄새, 뜯을 때의 소리까지 전부 다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몸에 각인되어 0.00001초 만에 반응한다. 특히 용기에 남아 있던 요구르트의 달콤함은 또복이의 뇌에 깊이 각인된 듯하다. 뚜껑을 따자 마자 척척척! 녀석의 경쾌한 발소리가 들리니...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아니라면 무엇이 또복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집 밖을 나가면 목줄을 해야 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가지도 못하는, 주인에게 얽매여 사는 삶인데... 그렇다고 매일매일 산책코스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하루의 상당 부분을 주인을 기다리며 보내는 게 녀석의 운명인데... 어떻게 또복이는 매일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에 반해 우리는 목에 줄이 메어 있지도 않고 원한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싫은 사람은 안 만날 수도 있다.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우리인데 어째서 죽상을 하고 죽지 못해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지 이 또한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래서 또복이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어떻게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지를... 그랬더니 또복이가 그런다.
"매일매일이 최고의 날인걸요, 저는 참으로 축복받은 존재인 것 같아요. 매일 흥미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고요.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도 있어요. 잔디에 누워 일광욕도 할 수 있고요. 못 보던 고양이를 만나면 한 껏 놀라게 해 줄 수 있어서 신나요. 어제는 어제대로 좋았고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설레고 많이 기다려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 또복이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을 산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여기 지금 이 순간이 녀석의 전부이니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야 알았다. 또복이가 매일 아침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기쁨들을 자주 맛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부자가 되어 있거나 경제적 자유를 얻어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삶을 꿈꾼다. 내 삶에 강렬하고 극적인 순간이 찾아와 나의 인생을 한 순간에 변화시켰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일생에서 커다란 행복감을 주는 이벤트를 자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졸업, 결혼, 승진, 유럽여행과 같은 사건들은 순간적으로 깊은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드물다. 또 시간이 지나면 그 강렬함은 흐려지고 사라진다.
강렬한 행복의 감정은 지속적이지 않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또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한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새로운 쾌락이나 만족을 추구하지만, 이러한 쾌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게 된다고 한다. 즉, 새로운 경험이나 물질적 보상이 주어져도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은 일시적이며, 결국 다시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몇 번의 강렬한 만족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더 필요하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통화, 또는 퇴근 후에 갖는 평화로운 시간 등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우리는 행복이란 감정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행복이 빈도에 달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습관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거창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복이가 그러는 것처럼 삶의 작은 순간들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 순간들을 자주 만들어가다 보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긍정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행복의 요소로 '긍정적 감정', '몰입', '의미', '성취'와 같은 요소들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긍정적 감정의 빈도가 장기적인 행복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큰 사건이 주는 단기적인 행복보다,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 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