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니제주 김철휘 Sep 23. 2024

편안한 불편함

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10화

유쾌하지 않은 불청객



또복이를 데리고 산책을 갑니다. 미소가 가득한 또복이의 표정에 즐거운 마음이 됩니다. 대문을 나선 지 50미터쯤 되었을까, ‘아차’ 하며 '똥봉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떠오릅니다. 순간 심한 내적갈등에 사로잡힙니다. 다시 돌아가 '똥봉투'를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산책을 나설 것인가? 햄릿의 고민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되돌아가 잊은 것을 다시 들고 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한번 활성화된 *전두엽은 쉽게 그 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또복이는 깊은 풀숲에 똥을 누는 게 습관이니까, 오늘도 예외 없이 그럴 거야. 그러니 하루쯤 안 가져가도 크게 상관은 없을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소리와 '아니야 저번에도 안 가져갔다가 나뭇가지로 대충 처리하고 왔잖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건 민폐야 얼른 가져와’라는 양심의 소리가 부딪힙니다.


제가 사는 '고내리'는 해안가를 끼고 있는 제주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입니다. 앞으로는 '고내포구'가 있고 뒤로는 '고내봉'이라는 오름이 있어서 강아지를 산책시키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요. 서울과 같은 도심에서 또복이 같은 대형견을 키웠다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나무와 풀과 흙과 바람과 바다가 있어 또복이나 저나 큰 위안이 되는 동네지요. 


그런 고내리 해안 산책로를 걷거나 돌담이 정겨운 마을길을 걷다 보면 가끔 바닥에 ‘딱’ 붙어 있는 불청객을 만나게 됩니다. 각양각색의 강아지 ‘변’입니다. 길 가에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찾아보게 되는 건. 또복이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라는 굳은 의지로 ‘똥’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깔끔한 또복이는 냄새는 탐색하지만 절대 입을 대거나 몸에 다른 개의 똥을 묻히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니 발끝에라도 묻을 까봐 까치발을 딛고 저만치 포복을 넓혀 ‘변’을 넘어가는 또복이를 보면 지 몸은 참 잘 챙기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됐건 그런 똥들을 보면 눈 쌀이 찌푸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같은 반려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 제가 똥주머니를 잊어버렸을 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 인간이란 이렇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나에게만 이렇게 관대하다는 말인가?'


남의 잘못에는 죽비로 등짝을 후려치고 나의 잘못에는 테레사 수녀의 마음으로 용서하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오늘은 선한 마음으로 마음의 갈등을 잠재우고 똥주머니를 다시 가져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오늘도 또복이는 자주 애용하는 풀숲에 들어가 시원하게 뒤처리를 하고 나옵니다.


사실 엄격한 기준으로는 그런 곳에 눈 똥조차도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빗물에 의해 흘러내린 반려견의 배설물 또한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된다고 하니까요.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반려견이 똥을 눴다고 해서 그 것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흙에 묻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편안한 불편함



"편안한 불편함"이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작은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반려견의 똥을 치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간편하기 때문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거나 티끌 같은 작은 먼지를 닦기 위해 1회용 물티슈를 수시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 환경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지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삶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구에 편안함을 안겨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지속 가능한 선택을 하는 것. 반려견의 똥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고 치우는 일도 그런 선택중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배변봉투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산책가방에 충분히 여분을 보관합니다. 혹시 가방을 잊고 나왔을 때를 대비해 산책줄에도 배변봉투 주머니를 하나 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깊은 풀숲에 싼 똥이라도 치우려고 합니다. 오늘도 또복이와 작은 불편함이 커다란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산책길을 나섭니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전두엽은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과 함께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한 부분. 기억력, 사고력, 추리, 계획, 운동, 감정, 문제해결 등 고등정신작용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음.



이전 09화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