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우산

by 김유리

엄마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5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말을 배워 의사표현이 가능했고, 걷는 것은 당연했고,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지치지 않을 만큼 자라 있었으니, 1,2살 차이 나는 형제들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느끼는 질투심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신기하고 소중했다. 너무나 작은 아기가 움직이는 게 신기했고, 안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서 계속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그 정도였으니, 부모님은 오죽했을까,

동생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갓난아이는 밤낮 없도록 보살펴줘야 하니까,

당연히 나에게 오는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까지도 서운한 감정이 안 들었었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동생을 안고 있는 모습을 내가 좀 처량하게 쳐다봤었을까..

부모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동생은 약하니까, 엄마 아빠가 많이 돌봐줘야 해.

너한테 신경을 못쓰는 거는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동생을 더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야.

마음으로는 너를 더 좋아해.

그 어린 나이에 그 말이 이해가 됐다.

나는 누나니까, 동생은 아기니까, 동생을 더 보살펴줘야 해.

지금생각해 보면.. 나도 겨우 6살 미취학아동이었는데,

엄마 품에 안기고 싶은 나이였을 텐데, 엄마 품을 온전히 동생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괜찮아. 나는 엄마를 이해해.라고 생각했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서운 한 것도 화나는 것도 일단 참는 것,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 했던 것,

내 마음이 진짜 괜찮은 줄로 착각하고 살아온 것,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도 아니면서, 쿨한 척 해온 것.

형제가 있는 집에서는 한 번씩 들어봤을 말일 것이다.

언니니까 양보해, 오빠니까 양보해, 형이니까, 누나니까, 양보해.

동생이니까 양보해.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고,

이 말에 대한 대답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알겠어. 내가 양보할게.’

다른 하나는 ‘싫어! 나는 절대 양보 못해!’

나의 경우는 전자였다.

동생에게 엄마 품을 양보한 것은 내 성격이 발현된 첫 순간이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도, 나를 우선시하는 것도,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어느 여름. 장마철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날 우산이 없었다.

학교 앞에는 애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이 줄지어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당연히 오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돌봐야 하니까.

책가방을 머리에 쓰고, 집까지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뛰어가다 횡단보도 앞 우산을 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품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나에겐 엄마가 있구나.

엄마는 동생을 옆집에 맡기고 나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비 오는 날이면, 가끔 그때의 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고, 나보다 컸던 엄마는 나보다 작아졌다.


엄마는 내게 비 오는 날의 우산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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