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자리

by 김유리

요즘 나는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내게 어울리는 자리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나는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와 내가 앉고 싶은 자리가 다르다.


나는 중소잡부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중소기업의 경영지원팀의 자리다.

내가 다니는 중소기업의 경영지원팀은 회사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부서 업무 이외에 탕비실 정리부터 에어컨 필터 청소까지도.

뭐,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내 인생을 참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도 참고 억지로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회사에 다니기 전에 직장은 업종 특성상 코로나 타격을 크게 받는 업종이었다. 평균매출의 90% 급감하였지만, 고정지출비용은 그대로였기에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거래처 대금을 밀리기 시작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빚독촉 전화를 받아야 했다. 매번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고, 어떤 달에는 직원 급여를 삭감했어야 했다.


액받이 무녀가 된 기분이었다.

덩치가 나보다 큰 회사 상사는 내 등뒤에 숨어서 나를 총알받이로 썼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지금의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지금의 회사는 특성상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질이 급하고,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상냥한 말투로 말하는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감동받을 지경이었다.

거래처가 부도나서 받지 못한 돈 2억 원을 날리게 생긴 상황에서 하루하루 피가 말랐던 시기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참는 거였다.

이런 ㅈ같은 상황을 겪는 것에 내 수준이 이런 ㅈ같은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자책하고 비관했다. 삶의 의욕이라는 것이 사라졌던 거 같다.

종종 연락하는 친구가 묻는 안부에 나는..

“어떻게 지내? 제발 똑같다는 말은 하지 말아 줘.”

“미안하지만, 똑같아.”


나는 문턱 증후군이 있다.

이 문턱만 넘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참자.

나는 내가 가고 싶은 자리,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달하는 것 외에는 관심과 흥미가 생겨나지 않았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하고, 삶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내가 너무 염세적인가’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하굣길. 친구들과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평생 고등학생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왜 그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내게 벌어질 날들을 예상했던 걸까.

내가 왜 요즘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돌이켜보니,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 때문이었다를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일명 앵무새.

왜 앵무새라고 칭하는지 짐작이 되는가..?

앵무새 아주머니는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습관이 있다.

처음 겪어보는 인간 유형이었다. 살면서 누가 내가 한 말을 따라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업무 관련 미팅을 할 때면, 앵무새 아주머니는 앞사람이 한 말을 자꾸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앵무새 아주머니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마치 본인 의견인 듯 살을 붙여서 말한다. 나는 그게 몹시 거슬렸고, 불편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궁금했다.

‘왜 남의 말을 따라 하세요?’ 묻고 싶었지만, 끝내 못 물어봤다.

본인은 아마도 본인이 남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을 인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앵무새 아주머니는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생산팀 직원으로 계셨던 분이다.


앵무새 아주머니의 첫인상은 좋았다.

마치 회사의 터주대감처럼 새로 들어온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앵무새 아주머니가 회사 부장에게 내가 탕비실 정리를 하지 않는다고, 고자질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탕비실 정리를 안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내가 정리하고 있으면, 본인이 와서 자기가 하겠다고 그랬으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앵무새 아주머니가 그렇게 얘기했을 리가 없는데.. 그 부장이 착각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앵무새 아주머니는 남의 말을 따라 하는 특성 외에 본인 말만 하는 특징도 있었다.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끼어들어서 본인 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별로 궁금하지도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다 회사 내부 사정상 생산팀에서 일하던 앵무새 아주머니가 영업팀으로 부서를 옮겨 일하게 되었다. 그러자, 생산팀에서 있을 때는 몰랐던 앵무새 아주머니의 업무역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어났던 일들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회사라는 공간은 이윤 추구와 지속 가능한 성장이 기본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존재할 가치가 없는 거니까.’


본인도 본인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던 자리에 있었던 앵무새 아주머니는 회사를 떠났다.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사람의 심리와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 찾아보니, 공통된 내용이 나왔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약하며, 다른 사람이 말한 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와 비슷한 의견을 내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사실은 본인도 본인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들을 찾아보고 나서야 앵무새 아주머니가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앵무새 아주머니의 퇴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과거가 떠올랐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가고 싶고, 선망했던 자리였는데, 막상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하게 되었던 때, 나는 3개월 만에 잘렸다.

잔뜩 위축되고, 쫄아있던 그 시절의 나는 드라마 회의 때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제작사 측에서 당연히 날 안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민폐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자리에 도달하는 과정에 보조작가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

기똥찬 작품을 써서 메인작가가 되자.

기똥찬 작품을 못써서 문제지만..


무기력하고, 무료한 나의 일상생활에서 회사에 앉아있는 날들을.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이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미워하며 보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이곳이 내가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나는 내 몫을 해내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그래도 잘 해내고 있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가고 싶은 자리에 갔을때,

내게 주어진 몫을 제대로 못해낼까봐 라는 두려운 마음이 있으니까.

그러니, 현재 내가 있는 자리를 미워하지 말자. 나를 미워하지 말자.

지금의 자리도. 지금의 모습도. 모든게 나다.


내가 있었던 자리, 내가 있는 자리를 거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가고 싶은 자리에 도달하기를.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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