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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과장 Mar 29. 2021

직장 후배에게 건네지 못한 조언

퇴사를 결심한 ㄱ후배 그리고 스스로에 관한 이러저런 생각들

   "저 다음 주에 그만둔다고 말하려고요"


점심시간 메뉴 주문을 마치고 3년 차 ㄱ후배 한 놈이 의례 떠들던 주식 등락 소식 대신 담담하게 자신의 퇴사 결심을 알린다. 식후 커피 한잔 사주면서 힘들지만 버티라는 건조한 조언 몇 마디를 건넸지만, 금세 의미 없는 시간임을 깨닫는다. "그래 그냥 커피나 마시자"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사람이 미래"라는 문장 그 자체이다. 연말 경영진 교체 시즌이 임박할 때면, 스탭부서는 신임 임원을 위한 경영계획 보고서 준비에 착수한다. 대부분은 문제 인식 - 조직 신설 - 기대효과라는 큰 틀 안에 지원부서장 PC 바탕화면 폴더 곳곳의 케케묵은 콘텐츠 몇 개로 돌려 막기 식 여백을 채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보고를 위한 보고이고, 요약하자면, TF 신설, 부서 통폐합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덕지덕지 오려 붙인 보고서가 어렵지 않게 최종 검토를 마치고 난 후, 비로소 각종 TF가 신설되고 연쇄적 부서이동이 시작된다.


올 연말에도 어김없이 카더라 썰이 돌았고, 이번엔 ㄱ 후배가 희생양이 되었다. 급조된 조직이다 보니, 제안한 사람도, 얼떨결에 맡게 된 조직長도 누구 하나 부서의 미션이나 개개인의 역할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ㄱ후배 놈은 하루가 다르게 풀이 죽어가더니 결국 더는 못 버틴다고 자포자기한 모양이다.


매월 20일 어김없이 통장에 월급이 찍히고, 커피 타임과 사내 가십거리 공유가 주요 일과인 잉여조직의 근무환경은 마치 천국 같아 보이지만, 성장욕구가 왕성한 주니어 Levle의 직장인에게는 지옥이다. 필자 역시도 약 1년 반 동안 정체모를 TF를 전전하다 운 좋게 현업 부서로 옮겼다. 덕분에 긴 투병 생활을 완치하고 새 삶을 사는 사람 마냥, 커리어 설계나 직장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최근 유통 산업계 조류에 편승해 조직에 염증을 느낀 유능한 선후배,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외롭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룹 In House 역할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태생적 한계일까? 입사 이래 신사업 진출이나 설비투자 혹은 M&A 등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내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갈라파고스 생태계에서 5년 뒤 필자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답은  스스로가 정하게 될 것이다. 늘 그래 왔고, 5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최근 2년 경력서도 고쳐 써보고, 주위에게 피드백 요청하면서 스스로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 보았다.   

결론은 당장의 회사 울타리가 필요했고, 앞으로 10년의 커리어 방향 설정을 위해 당장 어떠한 마인드로 출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당장이라도 이 회사를 떠날 채비를 하듯 일하자. 주위 동료 대부분은 회사의 호봉으로 산정된 연봉이 자신의 몸값인 양 쉽게 착각한다. 이직을 도전 한 사람은 한 번쯤 충격을 받는다. 최종 면접 이후 기대한 수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연봉 제안을 들었을 때, 미사여구로 포장한 경력서의 민낯이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구체적인 이직 활동처럼 자신이 가진 차별성, 경쟁력 등을 객관화하고, 원하는 커리어의 뼈대를 크게 그린다. 그러고 나서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수명 업무이라도 미리 설정한 Goal과 연결을,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그 업무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하자. 이직 혹은 퇴사 결심 유무를 떠나, 회사에서 주도적인 마인드셋 설정 시점은 최근의 JOB시장 흐름을 봤을 때 빠를수록 좋다


물론 경쟁만큼 연대도 중요하다. 요즘 성행하는 1인 크리에이티브 길을 걷기로 결심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조직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공감하고 공유하는 자세는 직장 생활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회사의 가장 큰 복지는 좋은 동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조직의 발전은 인사팀이나 위에서만 주도하지 않는다. 경영진의 생각과 별개로 개개인이 조직 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 방황하는 ㄱ후배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작은 노력도 포함될 수 있겠다.


그때 후배에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조언들은 결국 애꿎은 자신에게 향했다. 그리고, 며칠의 자문자답한 시간들이 어쩌면 스스로 더 필요했음을 느낀다. 조직 밖 세상은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비 합리적인 것들이 눈앞에서 난무하는 오피스도 더 더구나 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필자 자신과 주위 동료, ㄱ후배 놈도 주위 현상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스스로 내린 길을 담담하게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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