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걸음을 일부러 늦춘다.
예전 같으면 앞만 보고 달렸을 거리에서, 이제는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내 걸음이 느려진 건, 단순히 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빨리’ 사는 법을 배워왔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심지어 일상 속 대화에서도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쓴다.
효율을 높이고, 목표를 단기간에 달성하며, 성과를 숫자로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느림은 곧 뒤처짐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 하루가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느리게 걷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이 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두 정거장을 걸어간 날이었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그런데 한 10분쯤 걷다 보니, 그 길에 있던 오래된 빵집에서 막 구운 식빵 냄새가 스며왔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이 햇빛에 반짝였고, 소풍 가는 아이들이 서로 웃으며 뛰어갔다.
그 풍경은 어쩌면 늘 거기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느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선물한다.
속도를 늦추면, 세상의 소리를 더 잘 듣게 된다.
바람이 부는 방향,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내 발걸음의 리듬…
이 모든 것이 내 하루의 음악이 된다.
빠르게 살 때는 들리지 않던 멜로디다.
하지만 느리게 걷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빨리 달리는 세상 속에서 멈춰 서 있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다들 앞서가는데, 나만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 불안을 견디는 힘이 ‘용기’다.
이 용기는 나를 지키고, 삶을 지킨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다.
그건, 나의 속도를 찾는 일이다.
누군가는 산처럼 빠른 걸음을 즐기고, 누군가는 바다처럼 잔잔한 속도를 사랑한다.
중요한 건 세상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내가 숨쉬기 편한 속도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
어제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느리다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느림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