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취미를 찾아서

by 착한임

한때 나는 색연필을 좋아했다.
서랍 속에 고이 모아둔 48색 색연필 세트를 꺼내, 종이에 마음 가는 색을 칠하는 순간이 참 좋았다.
그 색들이 만나고, 겹치고, 번지면서 만들어내는 세상은 내 하루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세계를 여행하듯 살아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색연필은 서랍 안에서 점점 먼지가 쌓여갔다.
학업과 취업, 그리고 ‘어른의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색을 고르는 시간 대신, 이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취미는 사치라고 생각했고, ‘여유’는 일을 다 끝낸 뒤에나 누릴 수 있는 보상이라 여겼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 세계의 색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문구점에 들렀다.
한쪽 벽에 가지런히 진열된 색연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그 반짝임은 여전했다.
손끝이 근질거렸다.
‘이걸 다시 사면… 과연 쓸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 순간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새 색연필을 꺼내 종이에 선을 긋는 순간, 잊었던 설렘이 되살아났다.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색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즐거운 그 시간.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걸 성과로만 판단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취미를 되찾는 건 단순히 시간을 메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
어릴 때의 나,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던 나, 잘하고 못함을 따지지 않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나를 단단하게 했다.
하루가 힘들어도, 퇴근 후 색연필을 꺼내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내 마음이 환해졌다.

혹시 당신도 서랍 속에 묻어둔 취미가 있지 않은가.
기타 줄이 끊어진 채 방치된 악기, 노트 첫 장만 채워진 다이어리, 먼지가 쌓인 카메라…
그것들은 버려진 게 아니다.
그저 당신이 다시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색연필을 잡는다.
그 색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길은 분명, 나를 웃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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