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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Feb 21. 2024

공무도하가 듣는 아이

그리고, 알에서 나온 혀! 꼬! 세!

  아들에게,


  엄마는 고등학교 때 이상은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 워크맨에 이상은의 테이프를 딱 끼우고 이어폰 줄을 살살 풀어 양쪽 귀에 끼고는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지. 워크맨이 뭔지는... 음악 틀어주는 손바닥만 한 기계였다고 말하면 되겠구나. 음악 트는 기능만 딱 있는 거였어. 여하튼, 그렇게 틀면 소란스러운 주변 환경과 차단되면서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이상은 노래는 공무도하가였어.     


  公 無 渡 河

  公 竟 渡 河

  墮 河 而 死

  當 奈 公 河     

  

  이상은이 불렀지.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할꼬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오랫동안 안 듣고 지내다가, 요즘 너와 함께 다닐 때 차에서 틀어놓았더니 네가 물었어. 가끔씩 듣고 있는 노래 가사 이야기를 하면서 이건 어떤 이야기가 있는 노래야, 이건 어떤 마음이 실린 노래야, 하고 설명해 줬더니 네가 공무도하가도 궁금해했던 거야.     

  “엄마, 지금 노래에서 뭐라고 하는 거예요?”

  “여자가 남편한테 강을 건너지 말라고 하네.”

  “왜요?”

  “위험하니까.”

  “그런데요?”

  “남편이 강을 건넜대.”

  “헉!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남편이 물에 휩쓸려 죽게 됐대.”

  “......”

  “왜 말이 없어?”

  “너무 슬픈 노래다...”

  “그렇지? 이 노래 제목이 공무도하가야.”

  “네?”

  “이 노래는 아직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주시기 전에 나온 거라서 한자로 써서 제목이 그래. 한자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말이 공무도하야.”

  “공무도하예요 공물도하예요?”

  “무는 물을 잘못 발음한 게 아니라 한자로 하지 말라는 뜻을 가진 글자야. 공은 남편을 부르는 말이고. 풀어놓으면 남편아, 하지 마, 강 건너는 거, 정도 되겠지.”

  “공무도하... 도하는 뭐예요?”

  “강을 건넌다는 뜻이지.”

  “공무도하가 또 들을래요.”     


  나는 공무도하가를 세 번 반복해 주었어. 그리고 너는 태권도장에 가는 길에 네 리스트에도 공무도하가를 넣어달라고 했지. 왜 공무도하가가 좋냐고 물었더니 너는 슬픈 사랑 노래라서 좋다고 했어. 엄마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너도 좋아해 줘서 기뻤어. 스포티파이에는 두 개의 리스트가 있어. 엄마 리스트와 네 리스트. 우리는 씽씽이(우리 차 별명)에 타면 자동적으로 음악을 틀고, 너무 네 리스트를 많이 반복한 나머지 우리 가족은 이제 신청곡 시스템으로 가기로 했잖아. 누구든 신청곡을 말하면 다 틀어주지. 네 아빠는 요즘 올리비아 로드리고에 빠져있고, 엄마는 늘 그렇듯 잡탕으로 듣고, 너도 어른 노래 아이 노래 가리지 않고 듣지.      


  네가 요즘 또 많이 듣는 노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야. 아주 씩씩하게 따라 부르지. 특히 너는 알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알에서 나온 혁거세” 부분을 우렁차게 따라 해. 알에서 나온 혀! 꼬! 세! 엄마아빠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지 않을 수가 없더라. 혀꼬세만 있는 줄 아니? 형개토대왕(광개토대왕)도 있고 배배송송(대대손손) 훌륭한 인물이 얼마나 많니.

  넌 장기하도 좋아하고 장범준도 좋아하고, 아, 이영지도 무척 좋아하지. 그러면서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나 모두 다 꽃이야, 구름빵 같은 어린이 노래들과 네가 보는 영상의 주제곡도 그만큼 많이 들어. 둘리의 얼음별 여행이었나? 그 영화를 엉엉 울면서 본 뒤로는 아기공룡 둘리 노래도 호이! 호이! 하면서 따라 부르지. 엄마는 네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어서 너무나 좋아.


  앞으로도 같이 좋은 노래 많이 듣자.     

  오늘 눈이 쏟아지네. 바람도 세차게 불고.

  특별히 조심해서 운전해야겠어.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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