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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Feb 15. 2024

잘 버텨주어 고마워

엄마, 난 때리기 싫어요

  아들에게,     


  오늘 드디어 네가 가게 될 유치원 선생님과 다시 연락이 닿았어. 선생님께선 엄마에게 전화를 두세 번 하셨는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유치원을 보내겠다는 결심이 돌아섰나 보다고 생각하셨다는구나. 엄마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없는데. 아마도 엄마 전화번호를 입력하실 때 잘못 입력하신 게 아닌가 싶어. 너와 관련된 일이 진척이 없어서 엄마는 몇 주간 가슴이 답답했어. 슬그머니 부아도 났지만 선생님께 그걸 내색하지는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썼어. 혹시나 네게 나쁜 영향이 있을까 봐 조심스러웠거든. 드디어 미리 유치원을 방문해 보고 선생님도 만나보고 엄마는 엄마대로 필요한 서류를 듣고 준비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하네.     

 

  아기 티를 벗고 어린이가 되면 슬슬 본격적으로 무리를 지어 놀기 시작한다더라. 그 무리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까지 지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너도 슬슬 동성인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리고 싶어 했지. 그렇지만 그게 네 마음 같지는 않았어.

  여아들이 70%를 차지하는 네 반에서, 한 줌 있는 남아들은 예전에 너를 때렸거나, 너를 따돌리거나, 너를 만만하게 보는 아이들이었잖아. 네가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고 놀면, 그걸 몇 개 더 만들어서 자기들에게 주면 같이 놀아주겠다는 둥, 화가 나면 너에게 장난감을 던지거나 때렸지. 물론 너만이 유일한 피해자는 아니었어. 여자아이들도 많이 당했으니까. 여하튼 엄만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 새로운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록할 때마다 너도 엄마도 혹시 남자아인가? 하고 기대했지만 신기할 정도로 다 여자아이였지. 너는 “엄마, 이번에도 여자아이가 왔어요.” “엄마, 나도 남자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마다 어린 네가 너무 외로움이나 고립감이라는 감정에 먼저 익숙해져 버리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어. 화도 나고 답답한 마음에 (그러면 안 되는데도) 참지 못하고 너도 때리라고 할 때면 너는 “엄마, 난 때리기 싫어요.”라고 할 뿐이었으니까. 그런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 여아들이니 방법도 없고.


  너를 때리던 아이는 1년이 넘게 다른 아이들을 때리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어. 그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엄마는 여러 번 말을 꺼냈어. 좋게 말해보기도 하고, 훈육 방법을 제시해보기도 하고, 직접 나서겠다고도 해봤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의 엄마가 자기 아들이 또 널 때렸다며 미안하다며 전화했을 때 엄마는 귓전에는 이미 네게 들은 “엄마, 머리를 너무 세게 맞아서 눈앞에 별이 다 보였다니까요.”라는 말만 윙윙 맴돌았지. 엄마는 크게 화를 내버렸어. 그리고 더는 그 엄마 모임에 나가지 않았어. 솔직한 심정으로 아직까지도 그 아이나 그 아이의 엄마를 마주치면 기분이 나빠.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이들은 아직도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고, 너만 쓸쓸해하는 게 엄마는 참을 수가 없더라.


  무엇보다 그 아이들의 나쁜 영향을 네가 받게 하기 싫었어. 엄마가 무슨 맹자의 엄마까진 못되어도, 유치원 정도는 옮겨줄 수 있잖아? 네 환경을 바꿔주기로 한 거야. 풀 죽은 네 모습에 너 자신이 익숙해져버리지 않게 태권도를 등록한 게 벌써 3개월 차에 접어드네. 넌 이제 노란띠이고, 도장에서 남자 친구들과 형아들과도 친구가 되었다며 눈이 초롱초롱해. 엄마는 다음주가 너무 기다려져. 네 눈에 보이는 유치원은 어떨까? 선생님을 만나 뵙고 인사드리면서 넌 어떤 인상을 받을까?


  유치원에 진학하고 만나게 될 아이들이 다 네 마음 같지는 않을 거야. 누구도 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소규모 유치원이고, 선생님이 그만큼 더 네게 신경 써주실 수 있는 환경은 주어질 거야. 너는 얼마 전에 새로운 곳에 가서 잘 지내지 못하면 어쩌죠? 하고 걱정했지만, 넌 잘 지낼 거야. 엄만 알아. 너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이니까. 그런 아이라고 믿는 게 아니고, 그냥, 아는 거야. 너는 그런 아이란 걸. 걱정되고 긴장되는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런 마음이 들 땐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 엄마는 네가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줄게.      


  2월의 반이 지났어. 남은 반은 어린이집 출석에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다니고 싶은 박물관도 많이 다니다가 3월에 씩씩하게 입학하자.

  잘 버텨주어 고마워.


  늘 네가 자랑스러워.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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