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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Jan 26. 2024

너 혹시 시집을 삼킨 거니?

반성한다, 오늘도.

  난 가끔씩 아들이 시집을 삼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들은 내 뇌에서는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내 입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말을 잘 꺼낸다. 그런 말들에는 대개 마음이 진하게 묻어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온 가족이 조르르 누웠다. 그런데 아들이 계속 자기 아기 때 사진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 안 된다고 했다. 누운 채로 가만히만 있어도 잠들걸, 괜히 스마트폰 화면을 3초만 쳐다봐도 잠이 달아나지 않나. 아들이 잠들어야 하루 일과를 마친 남편과 함께 스르르 마루로 자리를 옮겨 도란도란 대화도 하는 거 아니겠나. 그랬더니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사진을 못 보게 해서 마음속의 꽃들이 다 녹슬었어. 난 마음속에 꽃들이 있어야 하는데.”

  꽃이 시들지 않고 녹이 스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또 당장 상상해 버린 내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지 아들이 세수, 양치를 안 하고 미적댔다. 나는 (재촉금지라고 네 글자 크게 써놓은 포스트잇을 시선이 자주 닿는 곳에 붙여놓고 살지만 또 참질 못하고) 재촉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랬다.

  “엄마, 난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가 날 혼낼 때도 사랑하고, 화낼 때도 사랑하고, 아빠 요리가 엄마 요리보다 더 맛있을 때도 사랑해요. “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엄마, 나는 기다려주는 엄마가 필요해요. “

  어젯밤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더 잘하라고 해요?” (눈물 그렁그렁)


  난 만 5세가 되기도 전에 그런 말을 했을까?

  아들의 말에 나는 종종 무안해진다. 내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엄마상에 나도 모르게 다가갈 때 아들이 브레이크를 밟아주면 나는 민망해하다가 아들의 몸이 부서져라 안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곤 돌아서서 아들의 말을 적어놨다가 곱씹으며 웃기도, 감동하기도, 이렇게 반성하기도 하며 산다. 그래. 반성한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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