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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Feb 09. 2024

흉내를 잘 내는 너는

경기도에서 자라기는 하는데…

  아들에게,


  너는 서울에서 태어났어. 그러다 경기도로 이사를 왔지. 너는 이곳을 많이 좋아하여 자라서도 이곳에서 살겠다고 말하지. 그런데 네가 입을 열면 충청도 아이가 튀어나오는 거, 아니? 네 할머니할아버지가 충청도 분들이라 그럴 테지. 네 말은 느리고 말꼬리는 길단다. 사투리 단어를 쓰지는 않지만 말투에 여유가 넘치는 것이 영락없는 충청도 양반이야. 네 친구 엄마들이 널 도련님이라고 하기도 하지. 그런 네가 드디어 충청도 사투리 어휘를 흉내내기 시작했어. 엄마는 그런 네가 너무 재미있어. 그런 너를 보면서 네 할머니할아버지도 그저 밝게 웃으신다.

  

  어릴 때부터 영어다 중국어다 난리인 집안이 많긴 하지만, 엄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너는 흉내를 잘 내지. 엄마가 틀어놓고 따라 흥얼거리는 팝송도 너는 따라 흥얼거려. 심지어 은근히 알아들을 정도로 흉내 내서 엄마가 놀란 적도 심심찮게 있었어.

  엄마가 전에 그랬지? 어차피 남의 나라 말은 흉내야. 그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늘어버리는 게 언어야. 일단 우리말부터 잘 익힌 다음에 남의 나라 말도 시작해 보자. 다른 건 몰라도, 외국어 공부는 엄마가 조금 아는데, 일찍 시작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남들이랑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다고 좋은 것도 아냐. 엄마는 그저 네가 자라서 외국어 소설책을 읽으면서 남의 문화 남의 유머 남의 세상을 지켜보며 시야가 넓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


  넓게 보고 많이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나렴.

  사랑해.


  엄마가.


  (일단 오늘은 충청도 월드에 들어왔으니 맛난 거 많이 먹고 많이 웃고 그려~ 내일은 경상도 월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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