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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Jan 22. 2024

주머니 속 핫팩 같은 너

이따 만나, 사랑해.

  아들에게,     


  엄마는 지금 너를 태권도장에 보내놓고 근처 커피숍에 와있어. 근 한 달을 울며 들어가고, 사범님이 무섭다고 그러더니 이제는 목소리에 기합이 들어간 체육인의 말들이 두렵게 느껴지는 시기가 지났나보구나. 신발을 벗고 너는 담백하게 손을 두 번 흔들어 인사하고 계단을 올라갔어. 과하게 흥이 오른 모습도, 징징 우는 모습도 아니라서 엄마는 그 손인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고 안심되었어.

  너는 어제 태권도장에서 가르치는 문구를 힘차게 외치며 놀았어.

  “약한 자를 도와주고 강인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태권도를 배웁니다.”

  평소에 흥얼거리는 알 수 없는 음률과 “빠” 한 글자로 무한반복되는 가사에 익숙해졌던 엄마의 귀에 콕 박히더구나. 태권도를 다닌 후 너는 목소리가 커졌어. 몸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놀기 시작했지. 친구들이 밖에 나가서 놀자고 하면 집 안에서 변신로봇 장난감만 만지작대던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들지. (물론 넌 아직 집을 벗어나진 않지만, 집 안에서 많이 움직인단다. 네가 대왕집돌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인사성도 좋아졌어. 두 손을 배꼽에 포개어 올리고 90도로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인사도 하지. 그런 변화를 목도할 수 있는 건 네 엄마인 나만이 가진 특권 같아 어깨가 으쓱 올라가기도 해. 엄마도 널 보며 자극받고 있어. 이제 고질적인 요통을 벗어나고, 허벅지에 근육도 좀 붙여보려고 거의 매일 실내 자전거를 타. 

  이렇게 오늘도 나는 너를 키우고, 너도 나를 키우며 하루가 저물어 가네. 사소한 것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내게 네 아빠는 어쩜 이리 소박하냐며 웃지만,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안에서도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쁠 것 없지.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주머니 안에 따끈한 핫팩 하나 쥔 든든함이 있잖니.   

   

  늘 네게 편지를 쓰고 싶었어. 너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키워가는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번뇌와 후회와 희열과 환희를 말하고 싶었거든.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고, 또 얼마나 다시 일어서는지 보여주고 싶거든. 아직은 보내지 못하는 이 편지들이 네가 자라나면서 엄마를 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인간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구나. 눈물 툭 떨어지는 감동적인 편지나, 멋드러진 편지를 쓰려고 어깨에 힘주고 시작할 생각은 없어. 우리 함께 외출할 때 네 카시트에 안전 벨트를 매주고 엑셀을 밟듯 부드럽게 시작하려고 해.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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