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복과 털양말 Feb 29. 2024

꺼내지 않은 이야기

슬퍼했다면서?

  아들에게,


  넌 유치원에 가게 된다고 예!! 하고 함성을 질렀지. 엄마도 홀가분한 마음이었어.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마지막 알림장이 도착했어. 선생님은 네가 어린이집을 떠나게 되어 친구들과 작별하게 되어 함께 슬픔을 나눴다고 쓰셨더구나. 엄마는 전혀 몰랐어. 유치원 이야기만 나오면 넌 기대에 차서 신나 했으니까. 그런 네가 신기하긴 했지만, 네가 친구들과 헤어져서 슬프다는 말을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네가 신나 있다는 사실에만 안도했어. 네가 슬펐다고 말하면 엄마 마음이 안 좋을까 봐 말을 꺼내지 않았겠지. 넌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아이니까. 너의 기대와 신남이 엄마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읽어내고 거기에 맞춘 정답을 준 거였을까?


  슬플 수도 있고, 기대감에 찰 수도 있지. 엄마는 그저 네가 슬픔을 엄마에게 숨겼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어. 넌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 벌써부터 부모에게 마음을 숨기기 시작하는 건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매일매일 조금씩 작별하는 일이라고 들 하더니만 딱 그런 것 같구나. 네가 훌쩍 자란 것 같아. 아쉽고 적적한 마음이 드는 걸 부인할 수 없네. 내 품 안의 자식인 너였는데. 그래도 그게 네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인 걸 알아. 조금 아쉽지만 받아들이고 있어.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엄마가 해내지 못했네.


  엄마는 중학생 때부터 방 문을 잠그고 살았어. 조금 유별난 편이었지. 그 무렵에는 세상 누구이든 상관

없이 내가 아닌 존재가 내 공간에 침투하는 게 싫었어. 오염당하는 것 같고, 나를 뜯어고치려는 존재들에게 내 마음을 뭉텅이로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거든. 그보다 더 어릴 때도 그랬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네 외할머니에게 엄마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았네. 너도 언젠가 엄마처럼 문을 잠그는 날이 오겠지. 뭐, 어쩌면, 그저 문을 닫는 데 그칠지도 몰라. 넌 나와는 다른 존재니까 행동도 물론 다를 테지. 하지만 선이라는 게 그어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것 없겠다.


  그리고 어제 너는 내게 물었어.

  “엄마, 내가 엄마에게 방해가 되나요?”

  엄마가 핸드폰을 잡고 있어서 그렇게 물어본 것 같아. 엄마는 뭔가 할 일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그걸 계속 파고들거든. 여러 일에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걸 엄마는 잘 못해. 그래서 자꾸 핸드폰을 잡고 뭘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야. 너는 마음을 얼마간 쌓아두었다가 말을 꺼내는 스타일이지. 그래서 나는 네게 바로 미안해졌어. 네가 스스로 엄마에게 방해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최소 한 차례 이상 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마음에 어제는 한참을 잠 못 들고 뒤척였네. 네게 사과하고, 엄마의 성향을 설명해 주었는데, 그게 네 마음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까? 그걸 잘 모르겠구나. 엄마도 장단점을 다 가진 보통사람이라 네 마음을 나도 모르게 아프게 하는 걸 피할 수 없겠지. 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지 않으면서 키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점점 받아들이고 있어.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아등바등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해.


  다만 더 노력할게.

  네가 부모를 떠올릴 때 정답보다는 따뜻함과 든든함을 떠올릴 수 있게.

  

   오늘도 네 환한 미소를 여러 번 보여주어 고마워.

  사랑해.


  아직도 서툰 엄마가.

작가의 이전글 공무도하가 듣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