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치원 입학식
아들에게,
어제는 네 유치원 입학식이 있었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라 초등학교 신입생 형아누나들 옆에서 깍두기로 껴서 함께 입학식을 치렀지. 유치원 신입생은 너뿐이었어.
네 입학식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어. 네가 제일 먼저 엄마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으며 선생님께 걸어가서 꽃다발을 받았고, 그러는 동안 양옆에 나열된 의자들에 앉은 초등학생 형아누나들이 환호성을 질러주었지. 엄마는 이제 뒤로 빠지고 키가 크고 긴 생머리의 6학년 누나가 나타나서 네 손을 잡고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는 단상에 올려진 의자로 안내해 줬어. (엄마의 입학식은 어땠는지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기억이 날 리 없지.) 엄마는 네가 긴장해서 엄마를 찾거나 울지나 않을까 은근히 긴장했지만 너는 의자에 앉아 옆에 앉은 형아랑 이야기까지 하더라. 괜한 걱정이었던게지. 엄마와 아빠는 그런 네 모습을 보며 기분 좋게 낄낄거렸어.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러운 소년이 내 속에서 나왔는지 엄마는 도통 모르겠단다. 그저 네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울 뿐.
네 유치원 첫날인 오늘 교문을 통과하며 미리 나와계시던 교장선생님과 하이파이브를 했어. 학교가 작아서 그런 건지, 요즘 학교 문화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신기하더라. 그러면서도 첫날이라고 긴장했었나 봐. 선생님께 전화가 왔을 땐 목소리의 떨림을 지우느라 전화받기도 전에 아아 흠흠 아아 흠흠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그런데 넌 우리 집 작은 시금치 텃밭에 동네 고양이들이 똥을 너무 눠서 시금치를 먹을 수 없게 됐다고도 말하고, 어린이집에는 때리는 아이가 있었다고도 말했고, 우리 식구 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먼저 별이 되어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와 사람 셋, 하여 식구가 넷이라고도 말했지. 선생님은 네가 표현력이 좋고 말을 잘한다고, 새로 만난 친구 이름도 잘 부르며 노니 잘 적응할 것 같다고 하셨어. 걱정 많은 엄마의 노파심을 싹 지워주는 하루를 보낸 네게 너무 고마워.
오늘 너와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네 첫날의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 넌 뭐라고 조잘조잘 말해줄까? 오늘은 동네 이웃 형아네 집에 잠깐 들러서 빌려왔던 잠수함 장난감을 돌려주자.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유치원에서 미역국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니 미역국은 안 되겠고...... 엄마가 머리 한번 굴려볼게. 이제 한 해가 본격 시작된 기분이야. 아빠 대학원도 개강했고, 너도 유치원 입학했고. 엄마만 잘하면 되겠다.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