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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May 22. 2024

엄마는 부끄러웠어

정말 미안해

  아들에게,


  너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거야. 며칠 지나서 말하겠지. 엄마, 나 그때 무서웠어요,라고. 너는 며칠은 담아두다가 말하는 스타일이니까.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너의 느릿느릿한 행동에 엄마는 오늘도 답답해서 큰소리를 냈어. 시간 없어. 빨리 움직여야 해. 서둘러.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아우, 답답해.


  오늘 엄마는 결국 네게 답답하다고 말했지. 참았어야 하는데. 어쩌면 참는다기보다 너의 그 대책 없는 느긋함을 내가 소화해 낼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데. 엄마는 오늘도 그 과업을 달성해내지 못하고 짜증을 빽 내버렸어. 그래놓고 지금 이렇게 집에 돌아와 이미 여러 번 했던 후회를 또 똑같이 하고 있어. 예전에 영화를 봤는데 거기 나오는 여주인공이 이런 내용의 대사를 하더라. 자기 엄마는 자기가 학교에 늦을까 봐 재촉한 적이 없대. 등굣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개미 구경을 해도, 낙엽 색깔을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계속 보내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강 그런 이야기였어. 핵심은 엄마가 재촉하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신기함을 받아들이게 그냥 내버려 뒀다는 거였지.


  나도, 네 엄마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일은 너를 재촉하지 않고, 재촉하는데 네가 듣지 않고 여전히 등원 준비 이외의 각종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보이고 거기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보여도 입 꾹 다물고, 그렇게 우아하게 삶의 다양한 면모를 감상하도록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부인할 수 없겠어. 아무래도 어제 받은 스트레스를 비열하게도 대항할 힘이 없는 어린이인 너에게 부린 거 같아. 며칠째 이어진 편두통 때문에 힘들기도 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 화풀이지, 화풀이. 비열하게도, 아빠 없이 우리 둘이 있을 때만. 엄마가 못나서 그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는 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엄마, 사랑해,라고 했어. 엄마는 부끄러웠어.



  이따 만나.

  오늘은 그저 미안하기만 하네.

  방법을 찾아야겠어. 엄마도 너도 힘들지 않고 반복되는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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