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복과 털양말 Jun 01. 2024

우리 집에는 먼지 왕자가 산다

웃음소리가 생생해

  아들에게,     


  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어. 오늘은 같은 유치원 형아네 집에 초대받아서 놀러 갔지. 너는 집에 온 뒤로도 그 형아네 집에서 논 게 재미있었다고 두세 번은 더 말하더구나. 그리고 너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지. 초대하자. 네가 즐겁다는데, 네가 재미있다는데, 초대정도도 못해주겠니?     


  저녁에 우리는 함께 산책을 나섰어. 네가 좋아하는 삼회리 쪽 이쁜 산책로에 갔어. 거길 가면 징검다리도 있고, 올챙이가 정말 과장 없이 한 250마리 정도는 몰려있는 시내도 있지. 시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금방 북한강으로 연결되니. 여하튼 크기로만 보면 시내 같은 곳이야. 너는 세상 모든 생명체는 다 이쁘다고 했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잠자리를 이뻐했고, 그중에도 특히 물잠자리, 실잠자리가 좋다고 했더니 너는 올챙이도 잠자리도 다 귀엽다고 했지.

  삼회리 북한강로는 넓지 않은 아스팔트 길에 갖가지 풀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서 숲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도 주지. 엄마는 그 길이 마치 이야기 속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 같다고 했어. 그랬더니 너는 우리가 거인이 보고 있는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 거라고 하더라. 엄마는 네 이름을 그대로 딴 주인공이 나오는 동화책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것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희열이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너는 오늘 농담 따먹기라는 말을 새로 익혔고, 그게 재미있었는지 농담 따먹기를 하자고 했지. 엄마는 딱히 떠오르는 농담이 없어서 잠시 막막해졌는데, 그냥 아무 이야기나 지어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리 집에는 먼지 왕자가 산다고 말했어. 이야기를 계속해주는 가운데 네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던 네 얼굴을 본 기억이 오늘 엄마에게는 하이라이트였어. 그래서 적어놓을까 해.      



  양평 서종면의 한 집에는 먼지 왕자가 살아.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먼지 신하들을 침투시킬 수 있는 그이지만, 툭하면 돌리는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에 이젠 넌덜머리가 나버렸어. 그래서 그 집 꼬맹이의 몸속에 들어가기로 한 거야. 따뜻하고 보드랍고 촉촉한 꼬맹이의 몸속에 들어가서 더 이상 신하들을 이끌고 청소기를 피할 필요 없는 평화를 찾겠다고 하지. 그래서 먼지 용사들을 모았어.

  “자, 꼬맹이의 몸에는 여러 구멍이 있다. 누가 저 꼬맹이의 귓구멍으로 침투할 텐가?”

  “왕자님, 제가 가겠습니다!”

  “콧구멍 침투조는?”

  “저희가 가겠습니다!”

  “눈구멍 침투조?”

  “접니다!”

  “똥구멍 침투조?”

  “......”

  “똥구멍으로 침투할 용사가 없다는 말인가?”

  “왕자님, 저 꼬맹이는 방귀를 너무 잘 뀝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안락한 환경이다! 자, 용기 있는 자는 나오라!”

  “......”

  “정녕 똥구멍 침투조는 없단 말인가......”

  “... 제가... 가겠습니다.”

  “오, 그대는 진정한 용자다. 그대를 똥구멍 침투조로 임명한다.”

  그래서 각각 침투조는 평화로운 세상을 찾아 꼬맹이의 몸속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귓구멍으로 들어가니 털이 있네? 먼지 용사들은 털에 막혔어. 끙끙대는 사이에 귓속에서 나온 각종 분비물과 각질 등과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어. 꼼짝 못 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꼬맹이는 감기에 걸렸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귀도 좀 볼게요.”

  그런데 귀지로 막혀서 귓속을 볼 수가 없는 거야.

  “귀지 좀 뺄게요.”

  그렇게 귓구멍 침투조는 의사 선생님이 걷어내셨지.

  “왕자님, 저희는... 흑흑 죄송합니다!”

  왕자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먼지 용사들이 작전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고, 꼬맹이는 어린이니까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먼지 왕자의 생각이 맞았어. 며칠 동안 먼지 용사들은 잘 버텼어. 그러던 어느 날, 바닥에 무언가 툭 떨어졌어. 코딱지였어.

  “왕자님, 저 꼬맹이는 코를 너무 후빕니다. 왕자님의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하여 죄......”

  콧구멍 용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꼬맹이의 엄마가 나타났어.

  “코딱지를 파서 바닥에 버리면 안 된다고.”

  꼬맹이의 엄마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휴지로 코딱지를 싸서 버렸어. 꼬맹이는 네, 하고 대답한 뒤 화장실로 달려갔어. 이미 후빈 콧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막고선 아직 희망으로 가득한 콧구멍을 풀어버린 거야. 그렇게 콧구멍 용사들도 장렬히 전사했어. 게다가 꼬맹이는 멋 부리는 데 푹 빠져있었어. 변신 로봇이 등장하는 영상의 주인공처럼 뾰족 머리를 하겠다면서 손에 물을 묻혀서 머리카락을 슥슥 세우는 거야. 그러다가 발견했지. 눈구멍 용사를. 그리고 크게 소리쳤어.

  “엄마, 나 눈곱 있어요.”

  “그래? 그럼 떼면 되겠구나.”

  꼬맹이의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대답했지.

  이제 남은 건 똥구멍 용사뿐이었어. 똥구멍 용사는 의지로 활활 타올랐지. 꼭 침투해내고 말겠다는 그 마음이 꼬맹이네 집에 사는 늙은 흰고양이의 몸에 몰래 묻어서 화장실 앞까지 온 먼지 왕자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지.

  뿡.

  “엄마, 나 방귀 뀌었어요.”

  “그래그래, 방귀를 뀌다 보면 응가가 나올 거야.”

  먼지 왕자는 초조해졌어. 그때 엉덩이 사이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어.

  “왕자님, 전 아직 잘 있습니다!”

  “오, 그래! 어떻게든 힘을 내보도록 하게!”

  부부부웅.

  꼬맹이는 방귀를 뀌고는 깔깔 웃었어. 본인의 방귀 소리가 재미있었나 봐. 그러다 또 소리쳤지.

  “엄마! 엄마 말이 맞아요! 나 응가하고 싶어요.”

  그러자 꼬맹이의 엄마가 설거지를 멈추고 화장실로 왔어.

  “우리 아들, 응가가 하고 싶어? 그럼 응가해야지! 뭐 듣고 싶어?”

  꼬맹이는 늘 응가할 때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놓고 하거든. 그리고 꼬맹이의 엄마는 문 앞에서 기다리지. 노래 두 곡이 지나고 꼬맹이는 엄마에게 똥을 닦아달라고 했어.

  “똥구멍 용사! 자네 아직 살아있나? 대답해 보게!”

  “왕자님! 저는 아직...... 커헉. 꼬르륵.”

  변기 물이 쿠과과과 소리를 내며 내려갔어.

  그렇게 꼬맹이의 몸속에 들어간 먼지는 하나도 없었답니다!      



  대강 이런 이야기였지. 이걸 적으면서도 네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 같구나. 이제 막 토요일이 되었어. 한 주 일정 소화하느라 고생했어. 주말엔 신나게 놀든 편안히 쉬든, 내키는 대로 하자.     


  사랑해.

  늘 사랑하고 있어.          

  

  엄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