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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Jul 11. 2024

요즘 우리 사이는 엉망진창일지라도

엄마는 잔소리쟁이

  아들에게,     


  유치원에는 지각하지 않고 잘 들어갔겠지? 너를 보내고 뒤돌아 집으로 오는데 저 멀리서 네 친구들이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 너는 뛰는 법 없이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겠지. 네 친구들은 네가 올 때까지 소리 높여 너를 부르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웬만해선 뛰는 법이 없지.      


  얼마 전에 너는 아빠와 할머니할아버지댁에 다녀왔어. 네 할아버지는 네가 아직도 이가 갓 난 아기처럼 대하시지. 음식도 손톱만 하게 조각조각 잘라주시고 삐딱하게 앉든 돌아다니며 먹든 신경 안 쓰시고 네가 입만 벌리면 입속에 쏙쏙 넣어주셔. 너를 사랑하시는 건 알지만,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네게는 튼튼한 이빨이 있고, 충분히 음식을 잘라서 꼭꼭 씹어먹을 수 있고, 응당 그렇게 먹어야 하고, 식사예절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해. 사랑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라면 식사 부분에서 만큼은 엄마는 네 할아버지가 틀리셨다고 생각하지. 너야 편하겠지만. 식사하면서 네가 엄마는 잔소리쟁이라고 했다는구나. 네 아빠는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지 웃으면서 이야기했지. 엄마는 그게 웃기지 않았어. 엄마는 슬펐어.      


  세상에 누가 잔소리를 좋아하겠어? 엄마도 잔소리 듣는 거 싫어했는데 뭐. 거기에 ‘쟁이’라는 말까지 붙였다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어지간히 네게 잔소리를 했나 보다, 내가 너를 잘 이끌려고 한 그 많은 말들이 네게는 고작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이 들었지. 잔소리는, 다 알잖아, 그게 계속되면 대화를 하기 싫어진다는 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엄마는 덜컥 겁도 났지. 말을 해주지 않으면 너는 계속 놀고 난 뒤 뒷정리를 안 하게 되고, 하염없이 칫솔을 물고 딴짓하며 양치하지 않고, 매일매일 유치원에 지각하고 그럴 텐데. 말을 하지 않으면 어쩌겠니? 매번 대신해주겠니? 매번 화를 내겠니? 넌 요즘 엄마에게 “맨날”이라는 말도 잘해. 엄만 맨날 엄마 마음대로만 한다고. 규칙을 세워놓고, 세워놓은 규칙을 지키자고 하는 건데. 물론 엄마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도 네 눈에 많아 보였겠지. 괜히 없는 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고민 끝에 엄마는 일단 네게 잔소리를 확 줄일 생각이야. 네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야 많겠지만, 어린이들은 기본적으로 욕망 덩어리고, 그걸 다 들어주는 건 엄마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고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네가 바라는 것을 말하는 족족 들어줄 수는 없어. 게다가 엄마가 많은 걸 한꺼번에 개선할 자신이 없구나. 일단 잔소리를 줄이는 건 노력해 볼게. 잔소리는 말하는 사람은 아이가 안 들어서 스트레스 쌓이고, 듣는 사람은 기분만 나빠지니 서로 득이 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     


  엄마는     




  아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힘들구나.

  이 편지는 그냥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이따 만나.

  요즘 우리 사이는 엉망진창일지라도, 그래도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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