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경과
아들에게,
어제 네게 편지를 쓴 뒤 실제로 입에서 튀어나가려던 잔소리를 많이 멈추었어. 더 먹어라, 똑바로 앉아서 먹어라, 밥을 입에 물고 한참 있지 마라, 큰 음식은 네가 이빨로 잘라먹어라, 편식하지 마라 등등 밥상머리 잔소리와 정리 관련 잔소리를 내가 많이 했더구나. 그 말들을 덜어내니 엄마가 하는 말이 꽤 줄어든 걸 보니 말이야.
어제 엉망이었던 아침과는 달리 오후에 유치원에서 나올 때 너는 웃는 얼굴이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도 널 보고 웃었다. 대신 엄마는 먼저 말하는 대신 네 말을 듣고 반응하는 데 집중했어. 나도 모르게 자꾸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할까 봐 그랬어. 놀이를 하면 즐겁고 재미있기만 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자꾸 가르치려고 했나 모르겠어. 저녁을 먹을 때 엄마는 입을 여러 번 움찔거렸어. 엄마는 특히 식사예절에 민감하게 반응했네. 평소에 식사예절에 있어 조금 엄격한 면이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 엄마는 엄격한 외할머니께 식사예절을 배웠는데 그게 나름 자부심이었구나. 어느 식사 자리를 가도 서투를지언정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지. 그게 내겐 중요한 가치였어.
그런데 어찌어찌 잘 참고 네게 뭐라 하지 않고 지나갔어. 밥 먹는 중간에 자꾸 이것저것 만지작거리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가려는 걸 참으니 네가 조금 있다가 밥을 먹었어. 엄마는 스스로 잘 참아냈다고 생각했지. 좋아, 이렇게 저녁을 보내는 거야. 어질러진 마루를 네 손으로 치울 때까지 더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내가 치웠단다.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치우기에는 실패했어.
“아이고 마루가 지저분하네. 지저분한 곳은 정리해야 하지.”
너는 듣지 않는데 나 혼자 말하면서 네 장난감들을 정리했지. 네가 안 듣는 척해도 상당히 많은 경우 듣고 있었던 걸 아니까, 엄마의 말이 귀에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했지. 하지만 너에게 지시하지 않았어. 그만해도 또 엄마는 잘했다고 생각했지. 이게 뭐 별거라고, 엄마는 스스로 칭찬까지 해가며 나름대로 애를 썼어.
오늘 아침에 너는 아보카도를 갈아 넣은 요거트에 손을 대지 않고 아몬드스콘만 먹었지. 그래도 어제 해봤답시고 엄마는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 수월하게 입을 다물고 지켜볼 수 있었어. 그리고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타이머를 조작해 보여주었지. 이만큼의 시간이 있는 거라고 말이야. 아침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넌 요거트를 먹지 않았어. 그리고 타이머가 울리니 딱 일어나서 움직였어.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 일찍 유치원에 들어갔어. 물론, 달려가긴 했지. 어제는 앞서 뛰라고 버럭 했는데. 오늘은 하나둘하나둘 구령 넣으며 달렸어. 그랬더니 넌 어제보다 잘 달리더구나.
집에 돌아와서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아침을 수월하게 보내는 데 성공한 거야. 이게 시작인 거야. 엄마가 자꾸 가르치고 교정하려 드니 역효과가 났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같은 방식을 고집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 너도 엄마에게 짜증이 줄어들 거야. 엄마, 내 마음을 몰라요?? 내 마음속에선 지금 전쟁이 났다고요!라는 말이 네 입에서 자꾸 나오지 않겠지..
널 사랑하니까, 노력하는 거야.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가 되어 널 곁에서 지켜보고 싶을 만큼 사랑하니까.
이따 만나.
오늘이 지나면 주말이네.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 갖자.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