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복과 털양말 Jun 13. 2024

작별의 시기

보통의 일상을 보내다 가게... 해줄게

  하루가 길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벌써 입 밖으로 하루가 길다는 말이 새어 나온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심호흡했다. 오늘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기로 했으니 심호흡이 나올 만도 했다. 18살 먹은 고양이다. 부모님과 함께 산 세월이 20년, 이 고양이와 함께 산 세월이 18년이다. 그 녀석이 지금 피골이 상접해 있다. 느낌이 왔다. 갈 때가 되었구나. 그래서 동네에 있는 평가 좋은 한 동물병원에 전화하여 물어보았다.


  선생님, 18살 먹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이 녀석이 밥을 안 먹고 물을 안 마시고 움직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게 한 사나흘 된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큰 스트레스인지 알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게 고민이 됩니다. 그랬더니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노환입니다. 병원에 와도 수액을 맞추는 것 이외에는 해드릴 것이 없다는 게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도 죽음을 맞이하는 고양이에게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일 수 있습니다. 수액을 맞추면서 며칠 연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음에 드는 수의사였다. 그 동물병원에 갈 일이 없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 수의사의 말에 동의했다. 애초에 연명치료에는 나도 남편도 회의적이었다. 이 녀석이 자기 몸을 비우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일주일간 마음의 정리도 어느 정도 했다. 이 녀석이 세상을 떴을 때 허둥대지 않으려고 눈물 콧물 짜내며 화장장도 미리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계속 버텼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말했었다. 힘들 텐데, 굳이 버티지 마라. 네가 힘들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버텼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고 오늘이 8일 차였다. 그사이에 나는 의심이 들었다.


  아직, 때가 아닌 건가?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빨이 아파서 음식을 잘 못 먹는 건가? 노환이니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 한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하필 그 병원은 어제오늘 이틀간 휴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병원에 갔다. 그 수의사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혈액검사 수치가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아이 상태가 너무 나쁘다고 했고, 정밀 검사를 의뢰하면 결과가 나오는 데 사나흘 정도 걸리며 그동안 아이가 (난 동물과 18년을 살았지만 반려동물에게 ‘아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한다)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입원시켜서 수액을 맞추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정도면 많이 나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실히 나아지는 건지 물어보면 또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진 않을 거라고 했다. 말하는 동안 보이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이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 수액 기계를 대여해 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친구이자 가족으로 살아온 나의 고양이는 고양이 뼈 표본처럼 앙상해졌지만 여전히 집안을 느리게 돌아다닌다. 수액 기계에 연결해서 옴쭉달싹도 못하게 만들기 싫었다. 이 녀석이 사랑해 마지않는 내 남편 냄새가 나는 침대에도 오르락거리고, 덥다 싶을 때는 화장실로 가 시원한 타일에 배를 깔고 누워있을 수 있게 내버려 뒀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고, 수액 기계도 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수의사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 병원에 들어설 때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만.     

 

  내가 지갑을 뒤적거리자 영양주사라도 맞혀드릴까요? 하길래 거기엔 동의했다. 그마저도 거절하면 고양이가 죽길 바라는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이 잠시 스쳤기 때문에. 사실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지만, 비워내는 시간을 오히려 더 길게 하여 더 오랫동안 괴로워야 하는 게 아닐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맞추겠다고 했다. 계산할 때가 되자 영양주사는 서비스로 맞춰드린 거란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날 잠깐 쳐다보더니, 포카리라도 좀 먹이세요, 했다. 우리 부부가 뭘 입에 들이밀어도 먹지 않는 녀석에게. 내가 뭘 먹이려고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으로 보는 건지. 나는 강제급여는 반대한다. 어린 고양이도 아니고. 내가 늙고 기력이 빠져 세상을 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내 입에 억지로 무언가를 쑤셔 넣으며 살아있어라 살아있어라 강요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생명의 순환 고리에 고요히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참고로, 이 녀석의 이빨은 멀쩡하단다. 가벼운 구내염 수준이라 음식을 먹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내 친구이자 가족이자 룸메였던 이 녀석은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라는 게 확실해졌다. 일주일 내내 거부한 거다.  그래도 마음에 걸려서 이온음료를 사들고 집에 왔다. 먹으렴, 따라다니면서 집요하게 입에 그릇을 바짝 붙여도 이 녀석은 계속 고개만 돌릴 뿐.


이별은 쉽지 않다. 계속 끼고돌며 끌어안을 때도 있었고, 회사 그만두고 벌어놓은 돈으로 대학원 도전하겠다고 허리띠 졸라맬 때는 고통 분담하자며 곰표 사료를 먹여 털이 고슴도치처럼 뻣뻣해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아프면 당장 양쪽 어깨에 한 마리씩 들쳐 매고 병원에 가서 치료해주기도 했고, 가끔씩 맛난 간식이 있어 보이면 요놈들 챙겨줘야지 하는 마음에 얇은 지갑의 바닥까지 박박 긁기도 하면서도 너무 시끄럽게 굴면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를 빽 내지르기도 했다. 늘 불 같은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시간에 기본적인 애정이 깔려있었다. 아들을 낳고 집중해야 할 대상이 변했기에 내가 주는 사랑이 줄었을 때는 남편이 나보다 더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누아는 낯선 병원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떨다 갔지만 너는 집에서 보통의 일상을 보내다 가게... 해줄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자식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