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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Jul 25. 2024

더 빨리 사줄걸 그랬네

아이링고 블록

  아들에게,     


  네가 그리도 원하던 아이링고 블록을 중고로 구매했어.

  너는 금요일에는 유치원에서 아이링고 사용 금지라 끔찍하다고 했었지. 엄마는 어릴 때도 금요일이 참 좋았는데, 대체 뭐 어떤 장난감이길래 아이링고를 가지고 놀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금요일을 끔찍하다고 말하는 건지 호기심이 일었어.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지. 네가 평소에 잘 가지고 놀던 천재블록에 비해 블록 크기도 작고 회전이 되기도 해서 무얼 만들어도 천재블록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블록으로 거북선도 만들 수 있더라. 놀랍던걸.     

  이번 판매자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어. 물건 상태도 좋고, 깨지는 것 없이 어찌나 뽁뽁이로 잘 둘렀던지 엄마는 감동하고 말았어. 그분이랑 채팅하면서 그분이 “최선을 다해서 포장해서 보낼게요.” 했을 때도 이 정도의 포장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지더라. 너는 변신로봇이 나오는 영상을 보다가 엄마가 포장을 뜯는 모습을 보더니 영상을 바로 꺼버렸지.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더 빨리 사줄걸 그랬네.      


  오늘은 태권도도 안 가고, 바둑도 안 가. 바둑은 조금 더 커서 가보기로 했지? 바둑교실 선생님은 무엇보다 네가 남의 집을 따먹을 때의 희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어. 네가 바둑을 크게 재미있어하는 것 같지가 않다고, 사회성을 더 키우고 오면 좋겠다고도 하셨지. 우리는 체험수업을 네 번이나 받았고, 엄마는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아 마음이 영 불편했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안 받는다고 하셨어. 좋은 분 같았지만, 아직 우리와는 연이 없나 봐. (사회성 이야기는 왜 하신 건지 엄마는 잘 이해가 안 되네. 넌 어딜 가나 사회성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거든. 엄마아빠가 보기에도 그렇고.) 우리는 더 즐겁게, 다양하게 놀아보자. 많이 뛰어놀아야 할 텐데, 뭘 하면 좋으려나?      


  오늘은 유치원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아이링고를 하고 놀 수 있겠구나. 마음껏 하렴. 요 며칠은 참 수월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엄마는 네게 잔소리를 확 줄였고, 네가 엄마에게 짜증 내는 것도 따라 줄었으니까. 이렇게만 지내보자.           



  사랑해.

  이따 만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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