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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Aug 05. 2024

너의 어지럼증

대관람차에서 뱅뱅 도는 것 같다고 해서

  아들에게,     


  지난주 너는 매일 엄마와 붙어있었어.   네가 어지럼증을 말하고 대관람차에서 뱅뱅 도는 것 같다고 해서 엄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거든. 널 내 곁에서 떼놓을 수가 없더라.

  그 뒤로 엄마는 불안해졌어. 그래서 자꾸 물어봤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더라고. 지금은 어지러운 거 좀 어때? 하면서 말이야. 너는 계속 조금 어지러워요, 아까보단 조금 나아요, 하고 대답했지. 결국 엄마는 너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어. 너는 빈혈도 아니었고, 갑상선이나 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더라. (사실 소아과 선생님은 네가 입술도 분홍이고 너무 하얗다고 전에부터 조금 빈혈을 의심하시긴 했어. 역시나 넌 엄마아빠의 생각대로 그냥 애가 좀 하얀 거였지.)

  대신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라는 예상 못한 결과를 얻긴 했지. 침구류를 매주 삶고, 주 2회 물걸레 청소를 하라고 하시더라. 엄마는 안 그래도 침구 커버가 뜯어질 정도로 삶아대는데. 뭐, 방도 없지. 더 청소를 자주 하는 수밖에 더 있겠니. 알레르기케어 세제를 쓰고, 알레르기케어 침대커버와 베개커버 아니면 순면 제품으로 그득 채워야지 어쩌겠어. 괜찮아. 엄마가 인생에서 더 부지런해져야 할 타이밍인가 봐.

  엄마는 그 길로 소아과에서 나와 이비인후과로 달려갔지. 너는 또 다른 병원에 가냐고 투덜댔지만, 어지럼증이 귀의 문제일지도 모르잖아. 이비인후과 의사는 아이들이 귀에 문제가 생겨서 어지러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엄마를 돌려보내더라. 피검사 결과에 문제없이 나오면 귀를 보고, 거기서도 문제없이 나오면(물론 아이들이 귀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낮다고 미리 알려주셨어) 머리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소아과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생각났어. 그날 네 침대 매트리스가 배송되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그 길로 신경과를 찾아갔을 거야. 혹시라도 네가 크게 아프면 어쩌니. 그 상상만으로도 엄마는 아찔하던걸. 일단 소아과 선생님은 한 달 동안, 어지럽냐고 물어보지 말고, 지켜만 보라고 권하더라고. 엄마도 거기엔 동의했어. 계속 물어보면 네가 혼란스러울까 봐서. 한 달이 되기 전에 네가 또 어지러움을 호소하면 그땐 필요한 검사를 다 해봐야겠지. 아직까진 네가 또 어지럽다고 하지 않았어.

  계속 한쪽만 아프다던 무릎도 걱정이 된 터라, 큰 병원의 정형외과에도 갔었어. 엑스레이를 찍고 경력이 오래된 의사에게 가서 살펴보았는데 네 무릎엔 아무런 문제가 없대. 결국엔 그저 성장통이었던 게야. 한쪽만 계속 아프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그냥 넘겼을 텐데, 한쪽만 아프다는 말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했지. 의사가 정말 별거 아니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약간 머쓱해지기까지 했어. 문제가 없다면 몇 번 더 머쓱해져도 엄마는 상관없어. 성장통이 쑤신 거였나? 돌이켜봐도 생각이 나야 말이지. 엄마가 벌써 마흔을 훌렁 넘었다는 걸 엄마는 자주 잊어버리나 봐.


  일주일간 병원 투어 외에 집에만 있으면 그저 좋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넌 유치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니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했지. 네가 많이 자랐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어. 이제 네 마음속에 친구의 영역이 조금 더 커졌구나. 엄마아빠는 그만큼 작아졌고. 그 유명한 <엘리멘탈 2>에서 가족의 자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을 보여준다더니, 이게 그 시작인가 싶기도 하더라. (엄마 고등학교 동창은 두 자녀에게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으며 소위 슈퍼맘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는데, 그 동창은 아이들과 함께 그 영화를 보고 허탈하다고 하더라고.) 엄마는 괜찮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네가 점점 더 독립적인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을 것도 같고, 그렇게 되면 나도 내 인생을 사는 데 더 시간을 투여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도 오히려 생기더라고. 뭐... 엄마가 확실히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걸 체감할 때가 오면 또 다르려나?

      

  나중에, 먼 미래에, 네가 아빠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몇 군데씩 돌면 그때서야 너는 엄마의 심정이 어떤지, 출근해서도 틈이 나면 의사가 뭐라더냐며 궁금해하던 아빠의 심정이 어떤지 알게 되겠지. 그런 날이 오면 좋겠구나. 그럼 네가 엄마아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체감하게 될 테니까. 그럼 너도 아이만이 줄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늦은 밤이야. 네 말대로 제우스가 번개를 막 던져대는구나. 하늘이 계속 우릉우릉대며 번쩍거려. 네가 그 소리에 깨지 않고 계속 곤히 자야 할 텐데.     


  아침에 만나.

  또 “좋은 아침!”하면서 인사해 주렴.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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