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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Sep 09. 2024

잠든 네가 기침을 하지 않아

아침에 만나

  아들에게,     


  드디어! 드디어 네 폐렴이 나아가는 것이 뚜렷하게 보여.


  네 유치원 친구가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요즘 바이러스가 많이 도나 보네, 하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난데없이 너도 폐렴에 걸렸지. 어디서 걸린 건지 감도 오지 않는구나. 원인균 검사에서 네 경우는 마이코플라즈마는 아니지만 폐렴에 흔히 보이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걸려 나왔다고 했어.


  너는 입원할 정도가 아니었지. 열도 없었고, 기력이 떨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걱정스러울 만큼의 가래가 낀 기침을 연신했을 뿐이었어. 입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두 배는 더 오래 아팠네. 2주간 유치원도 못 가고 태권도도 못 가고 집에서 심심했을 텐데 너는 용케 심심하다고 짜증 내지도 않고 그저 푸념처럼 몇 번 심심하다고 말하고 넘어갔지.

  엄마가 나름대로 네 기세에 맞춰서 신나게 논다고 놀았지만 아마도 네가 친구들과 놀 때 주고받는 에너지보다는 많이 쳐졌겠지. 엄마는 벌써 마흔이 넘었고, 너 같은 어린이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쉽게 지치니까. 게다가 세 끼니를 준비하고 치우고 빨래와 청소 등등의 집안일을 하면서 너와 놀자니 엄마는 많이 힘들더라. 열흘쯤 됐을 때는 왜 이렇게 안 낫는지 소아과 선생님의 실력을 의심하며 또 정신없이 다른 병원을 찾아보기도 했었지. 하지만 엄마아빠의 기본적인 태도는 “의사를 신뢰해야 병도 잘 낫는다” 란다. 결국 끝까지 믿어보았고 2주 만에 폐 소리가 깨끗하다는 말을 들었어. 엄마가 네게 편지를 쓰지 못한 이유를 너무 구구절절하게 댔지? 엄마는 네 어지럼증 때문에 유치원을 쉰 일주일, 폐렴 때문에 쉰 이주일 내내 기절한 사람처럼 곯아떨어졌어. 괜찮아. 이제 다 끝났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지.


  다음날 밤에 바로 네가 또 잠을 못 자고 기침을 했어. 네 기침소리를 듣고 엄마의 불안이 점점 덩치를 키우더구나. 어차피 폐렴 때문에 간 병원은 네가 늘 다니던 소아과는 아니었어. 몇 년 만에 보는 그 선생님의 2주간의 휴가와 네 폐렴이 딱 겹쳤을 뿐이지. 결국 엄마는 다음날 바로 늘 다니던 곳에 가서 선생님께 그간의 증상과 호흡기 치료와 항생제 어쩌고를 상세히 말씀드렸어. 넌 그 병원에만 다녀오면 확실히 호전되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지. 오늘 유치원에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들이 드디어 네가 기침이 많이 줄었다고 하셔서 엄마는 기분 좋게 태권도로 향했어. 너무 기분이 좋았나 봐. 수련 시간을 착각해서 한참 일찍 도착해 버렸잖아. 엄마가 요즘 좀 이래.      


  아까는 무심코 메모장을 훑어보는데 네가 한 말을 적어놓은 게 보이더라. 아파서 집에 있는 3주 동안 너도 힘들었어.

    

  “엄마 때문에 남아있는 행복한 마음도 다 사라졌어요. 내 마음이 다 시들어버렸다고요. 원래 하얗던 내 마음이 다 시커멓게 시들었어요.”     


  이마트 근처였던 병원 탓에 진료받고 나서 이마트에 들러서 한 시간도 넘게 장난감을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어. 엄마는 그게 너의 병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 너는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엄마가 가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엄마 손을 잡았지. 물론 엄마도 오래 기다려주긴 했어. 하지만 너는 미련을 보이지 않고 딱 돌아섰고 엄마는 그런 네가 놀라웠어. 그런데 그런 날들이 자꾸 반복되고, 폐렴 때문에 입원했던 친구는 아빠가 병실로 변신로봇장난감을 사다 줬다는 말을 들은 뒤로 너는 더 참을 수 없었나 봐.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너는 말했어. 엄마도 사주고 싶었어. 그런데 걱정이 든 거야.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정해진 날 이외에 장난감을 사주다간 버릇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엄마는 안된다고 했어. 너는 많은 말을 했지.  

    

  “나는 계속계속 참았어요. 사실은 늘 사고 싶었는데! 자식이 갖고 싶다는 장난감도 안 사주는 엄마가 무슨 엄마예요?” (알아, 네가 늘 참은 거 알고 있어. 넌 대단한 아이야.)

  “난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아요. 이제 엄마가 없는 풍경만 볼 거예요.” (넌 고개를 휙 돌려서 차창 밖만 쳐다봤어.)

  “장난감 사주는 날이 있다는 규칙은 알아요. 하지만 나는 정말 사고 싶었어요. 왜 사주지 않았어요?” (그래, 넌 규칙을 잘 알아.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아기들은 떼를 써요. 하지만 난 조금 자랐기 때문에 떼를 쓰지 않은 거예요.”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고 하더니 너는 내 귀에다 저렇게 속삭였어.)     


  너의 수많은 말들이 결국 끝에는 “왜 사주지 않았어요?”로 끝났지. 난 정말이지 당장 차를 돌려서 이마트에 가서 사주고 싶었어.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면 정말로 울며 귓속말하며 계속 네 마음을 강변하면 엄마가 사준다는 공식이 성립되어버릴까 봐 끝까지 버텼어. 내가 너무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한 걸까? 엄마는 사실 아직도 네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단다. 네게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사실은 너보다 더 기다리고 있어. 벌써 9월이 되어버려서 경악스러운 마음과, 어서 시간이 흘러서 크리스마스가 왔으면 하는 마음이 뒤죽박죽이야.     

 

  오랜만에 태권도에 다녀와서 너무 좋다고, 내일 또 가고 싶다고 하는 너.

  엄마는 너를 사랑해. 세상 모든 아이를 트럭으로 실어다 나른 들 너 하나와 비교할 수 있겠니. 답답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처럼 행동해서 엄마도 마음이 아파. 하지만 이게 네 엄마란다..     


  잠든 네가 기침을 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야.     

  사랑해.


  아침에 만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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