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2

쓸데없이 잡생각 들 때는 장기하의 <해>

by 내복과 털양말

안녕. 첫 번째 편지 이후로 며칠 흘렀지.


너는 그 사이에 펌을 했어. 생각보다 발랄해 보이고 평소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는 것 같구나. 오랜만에 머리를 성공해서 기분이 좋았지. 네 삼십년지기는 너더러 아티스트 같다며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같다고 했지. 산뜻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까 산뜻하기도 하다기에 너는 졸지에 산뜻한 찬혁이가 되었지. 너에겐 조금 그런 분위기가 나지. 자유로운 영혼 같은 느낌을 풍기는. 대학생 때부터 그랬어. 하지만 너는 어느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순간에 깨달았잖아.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그런 느낌을 풍긴 게 아니라, 너무나 자유롭고 싶던 영혼이라 저도 모르게 그런 영혼들의 겉모습을 따라 했던 거라고.


너는 요즘 한글 페이지를 열고 앉아 헤드폰을 써. 그리고 조성진이 핀란드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친 동영상을 유튜브로 열어. 그걸 들으면서 너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지. 그 동작이 곡 타임랩스로 찍은 식물성장 동영상 같아. 광원을 향해 둥글둥글 원형을 그리며 자라는 작은 이파리처럼 너는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흔들지. 그 음악에서 너는 무거운 우울과 격정적인 좌절과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벅차오르는 환희를 들어. (처음 들었을 때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들었다가 사연 있는 여자처럼 울었지)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글자를 써 내려가다가 다시 음악에 끌려들어 가다가를 책상에 앉아 반복하지. 공모전에 내고 떨어지고를 몇 번 했나? 세 번? 괜찮아. 기대도 안 했었잖아. 계속 쓰기 위한 원동력으로 마감날짜를 활용한 거지. 그래도 너는 앉아서 쓰고 있어. 잘하고 있어. 그래. 너 말이야. 너는 잘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마. 더 써. 그렇게 살아. 미래도 과거도 생각하지 마.


9/10까지 단편 하나 더 마침표 찍어보자. 쓸데없이 잡생각 들 때는 장기하의 <해>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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