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들자
아들에게,
너는 요즘 무척 바빠. 시범단 공연 준비도 하고, 유치원 예술제 준비하느라 장구도 치고 핸드벨 훈련도 하지. (아, 네가 젓가락 행진곡 하니까 들려달라고 했었는데 엄마가 잊었네! 오늘 태권도 다녀와서 꼭 들려줄게.) 키도 어느덧 엄마의 가슴팍까지 치고 올라왔고, 이젠 샤워도 혼자 하고, 응가도 혼자 깨끗하게 잘 닦아.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멋진걸. 엄마가 일곱 살 때보다 더 낫네.
어제는 엄마의 동네 친구들(네 친구들의 엄마들)이 밤중에 급작스럽게 우리 집에 모였어. 엄마는 목소리를 듣고 네가 금방 깰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자다가 깨더라.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데다 밤중에 예상 없이 모이게 되어 엄마는 은근히 신이 났었지. 한번 잠들면 옆에서 노래방 기계로 한 곡 뽑아도 깨지 않는다는 친구네 엄마는 네가 엄마를 부르자마자 입을 딱 다물고 가자 가자 가자, 하면서 조용히 인사하고 돌아갔어. 엄마는 세 시간 동안 긴장감 넘치게 수다 떨어서 즐거웠단다. 아빠가 출장을 가니 이런 모임이 성사되기도 하네. 그래도 너는 다시 금방 잠들었고, 오늘도 지각하는 일 없이 등원했어. 조금만 버티면 돼. 시범단 공연만 끝나면 다시 평소 스케줄로 돌아올 테니까. 힘내보자.
요즘 엄마는 훠궈집에 가고 싶어 지는구나. 백탕에 살짝 야채를 담갔다가 고수와 흑식초와 다진 마늘을 듬뿍 푼 소스에 푹 찍어먹고 싶은데 좀 참고 있어. 너도 훠궈집에 가면 직접 재료들 접시에 담아와서 잘 먹지. 네가 직접 다니면서 재료를 고르는 게 즐거운가 봐. 뷔페도 그렇고 훠궈집도 그렇고, 그런 식당에 가면 네가 신난 게 눈에 보여. 아빠 돌아오면 같이 가자.
어제는 너랑 체스를 두고 네가 이기면 나도 네가 고르는 아이스크림 먹고, 내가 이기면 너도 내가 고르는 아이스크림 먹기로 했지. 아무것도 걸지 않는 것보다 훨씬 동력이 되고 재미가 붙어. 아슬아슬하게 마지막에 네게 지는 게임을 하느라 엄마 나름대로 머리를 좀 썼지. 조금은 이겨주고, 조금은 져주고 하면서 식탁에 앉아 너와 체스를 두는 시간이 즐겁구나. 우린 참 통하는 게 많아. 커피숍 가서 달달한 디저트와 음료 시켜놓고 책 읽기, 체스, 드라마, 음악 등등 너는 참 재미있는 녀석이야. 이번주는 바쁠테니 저녁에 더 놀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샤워 잘 마치고 일찍 잠들자.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