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브로콜리

이제는 미스터리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드디어 오늘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예약했어. 넌 지금 머리가 아주 덥수룩하거든. 한동안 열심히 길러서 멋진 웨이브를 넣으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결과물이 브로콜리처럼 나와서 넌 한동안 브로콜리로 지냈지. 엄마는 솔직히 빨리 잘라버릴까 싶었지만 펌에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참았더랬지. 너도 "다음엔 멋진 펌 해보자요." 했으니까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거지. 그렇게 결국 머리를 매우 짧게 깎고 또 시간이 흘러 더벅머리가 되었어.


그 사이에 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았고 이제는 미스터리의 머리를 하겠다고 결심했지. 미스터리의 머리는 눈을 다 가려. 옛날에 빅뱅이라는 그룹이 있었을 때 대성이라는 멤버가 그런 식으로 눈을 싹 다 가리고 나온 적이 있었지. 거의 그 머리 급이란다. 앞은 보이려나. 하지만 네가 하겠다고 하니 일단 그래도 관리를 해가며 길러야지 싶어서 뒷머리를 좀 정리하고 원장님께는 앞머리를 길게 기르려 한다 정도만 설명드리려고 해. 어차피 바로 그 머리를 할 수는 없어. 엄마는 그 머리에 네가 도달하기 전에 눈이 너무 찔려서 머리 깎겠다고 하길 기대하고 있지. 어쩌다 그 머리에 꽂힌 건지. 엄마는 진우 머리를 계속 권했지만 네가 너무 확고해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여하튼, 이제 조금 있으면 널 데리러 가서 시간 맞춰 미용실에 가야지.


요즘 우리는 <폭군의 셰프>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어. 거기서 왕은 7살인가 하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찢어지게 되거든. 그리고 엄마는 죽었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다 엄마가 물었지. 너는 강제로 너와 엄마를 찢어놓고 만나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너는 가만히 있더니 폭군 엄마의 영혼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어. 왕이 불쌍하다고도 했지. 폭군이 뭐냐고 물어보길래 설명해 주었더니 아, 그래서 폭군이 된 거구나, 하고 말이지. 옛날의 어린 세자나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온 여자아이들은 부모와 뚝 떨어져서 살고 참 힘들었겠다. 하루에 수백 번씩 엄마를 부르는 너희들인데 머무르는 곳도 달라, 정치적인 이유로 엄마가 쫓겨나거나 사약을 먹고 죽기도 해, 얼마나 그리웠을까?


마침 요즘 엄마가 보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이제 연산군이 등장할 차례야. 6권인 <예종. 성종실록>까지 다 봤거든. (본격 유교의 나라를 다지는 성종 부분을 보면서 엄마는 여자로서 가슴이 갑갑해지긴 하더라.) 드라마 주인공인 연희군이라는 인물이 엄마가 이제 볼 연산군을 모델로 삼았다더라고? 피바람이 몰아치겠지. 실제 연산군은 차마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짓들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해. 그 잔악함의 원인이 엄마와 떨어지면서 나타나게 된 게 아니라 원래 사이코패스였다는 말도 있고. 드라마이니 역사 속의 연산군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제 무서운 부분이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네. 드라마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모르겠지만 조금 보다가 무서우면 언제든 끌 생각 해야겠네.




우리 아들, 점심은 잘 먹었겠지?

엄마는 오늘 두통이 있네.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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