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길구나

내일은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이번 연휴는 정말 길구나. 엄마의 허리가 아픈 탓에 외할머니댁에 가는 건 뒤로 미뤄졌어. 외가에 가기로 한 날에 엄마는 쉬고 운동하고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회복을 해보려고 했지. 다행히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로 네 친가에 가서 차례를 지냈지. 네 할머니는 엄마에게 “넌 쉬어도 된다”라고 하셨지만 그게 어디 되겠니. 거길 가서도 중간에 좀 눕기도 하고 나가서 걷기 운동을 하며 허리 건강을 계속 신경 썼어. 그랬더니 꽤 나아졌지. 고모할머니도 오셨어. 절할 때마다 네 할아버지는 가족들 누구누구 왔습니다, 절 받으세요, 하시는데 이번에도 네 할아버지가 엄마를 빠트리셨어. 엄마는 저는 왜 언급 안 해주시냐고, 저 그거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지. 그래서 손주며느리도 왔다는 말씀을 웃으며 하셨지.

참 좋은 분들이지만 그래도 엄마의 친부모는 아니니 어쩔 수 없지. 부모가 아닌 분들에게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내가 그 어떤 아이를 아무리 위해준들 내가 널 사랑하고 위해주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 무의미한 기대란 건 냉정하게 잘라낼 때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야. 옛날 분들이고 그분들이 살아오신 시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충분히 양반이신 분들이라 엄마는 시댁 탓을 하거나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지. 엄마는 네 친가 어른들의 기대나 엄마의 기대가 적당히 중간지점에서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분들은 점잖게 한 발짝 물러나주신 분들이고, 엄마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그걸로 족해. 너도 나중에 어른들을 대할 때 존중하는 마음과 예의를 꼭 갖추렴. 무조건 다 순종하란 말은 아니야. 절대로. 거절은 정중하고 분명하게, 일단 동의한 일이라면 웃는 낯으로 예의 있게. 그걸 말하는 거지.


한글날이 다가오네. 세종대왕릉에서 한글날 행사를 한대. 한글용사 아이야 뮤지컬 공연도 하고. 네가 요즘 푹 빠진 그들이 온다니! 글자 다 떼고 스스로 책도 잘만 읽는 네가 한동안 시큰둥하더니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틀어주신다던 뒤로 다시 열광하고 있지.


내일은 엄마랑 버스 타고 서울 나들이 가자. 차를 몰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서울을 누비는 거야. 신난다!


아, 참, 네가 말하던 <어린이수학동아> 다음 호 구매했어. 금요일에 도착한다는구나. 그럼 또 신난 네 얼굴을 보고 같이 웃을 수 있겠지. 엄마는 이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조 편 봐야지! 광해군 편도 그랬다만 선조 편에선 정말이지 속 뒤집어졌지 뭐야.



늘 너를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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