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 칼럼
盡日尋春不得春 / 진일심춘부득춘
芒鞋踏遍幐頭雲 / 망혜답편농두운
還來適過梅花下 / 환래적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分 / 춘재지두이십분
종일 봄 찾았으나 봄은 얻지 못하고
짚신 끌고 언덕 위의 구름속 서성이네.
돌아오다 마침 매화 밑을 지나니
가지머리에 이미 봄이 충분히 있었다네.
오늘은 매화가지 아래 다시 찾아온 봄이란 주제로 아침을 열어 보고자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작은 이층 공원에는 매화나무 몇 그루가 봄이 되면 그 향기를 내뿜는다. 따뜻한 봄바람이 일렁일때면 어김없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올해도 그런 매화가지에 꽃망울이 맺혀 터질 듯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원의 온 도처가 겨우내 쌓질러 논 견공들의 흔적들에 거름 걱정 없는 밭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이다. 풀밭에 들어갈 일은 없지만 그 두려운 마음은 한편으로는 인간들의 흔적일 수도 있다. 사람이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래하였으니 말이다. 우리 집 개가 집을 나가고 나는 가장 우수한 피티 선생을 잃었다. 늘어나는 체중보다 매화나무 아래 흔적을 남기던 그 견냥의 추억이 아련하다. 어쨌든 봄은 낭만적인 흥분임에는 틀림없다. 개가 집을 나가고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들어왔다. 그런데 봄의 정렬적인 전령사는 정작 개도 아니고 매화도 아닌 우리 집 묘남묘녀이다.
이것은 생명의 시작을 위한 하나의 행동이다. 그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울음은 간혹 누군가에게는 고통이며 새벽을 지나치는 잠의 여행객들에게는 떠나는 기차의 화통 소리 같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니네 집 고양이 발정 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 묘부(猫婦)의 배가 심상치 않다. 그렇게 울어대던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부풀어 오는 매화 꽃망울만큼이나 우리 집 야옹이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쿠나 또 임신했구나.”
우리 어머니 말씀이
“가라는 장가는 안 가고 정작 사람은 애를 안 낳고 키우는 개 고양이만 줄줄이 새끼를 까니 이는 터가 좋은 건지 주인이 좋은 건지 모르겠구나”
씁쓸한 말씀이지만 이건 비단 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결혼과 출산은 본능과 사회적 관습으로 강요하기에는 이미 그 한계를 들어냈기 때문이다. 애 낳고 살아가던 시대는 주변에 할 것들이 한정되어이었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의 경제적 능력의 기회비용을 가정에만 두지 않는 개인주의의 시대이기도 하다. 물론 젊은 사람들에게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하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요즘은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희생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한다. 그런 시대가 바로 요즘이다. 봄도 다시 비행기 타면 겨울로 갈 수 있는 시대에 인간에게 발정이란 없는 것 같다. 다만 옛 추억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가을만 있을 뿐 그 상황은 나이도 한 목 하는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했던 달콤한 시절의 봄보다 생육하고 땀 흘리는 여름을 모습을 더 마주하는 것 같아 부러움보다 수고스러운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애 낳고 살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부러워했더니 정작 본인은 이렇다 평생 반만 성공하며 살 거 같다고 푸념하니 말이다.
어느 노인네 보고
“어르신 회춘하신 것 같습니다. “
라고 하면 과거에는 욕이지만 요즘은 돌아오는 대답은 명언이 가깝다.
“젊은이 요즘은 꽃이 봄에도 피지만 겨울에도 피고 지가 피고 싶을 때 피네”
백세인생에 어울리는 말이다.
알아서 갈테니 신경 끄라 일러라.
봄이 돌아오니 인생의 여러 가지가 생각되는 아침이다.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 차 한잔 들며 잠시 봄을 만끽하면 좋겠다.
2019년 3월 10일 북경 매화나무 아래서 김기훈
사족 : 여름 오기 전에 고양이 분양받으실 분은 개인적으로 연락 바랍니다. 외로운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