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조건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한장 칼럼

by Kimkihoon


“ 조건 -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상태나 요소.”

어제 늦게 군대에 가는 어느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이 친구는 북경에 유학 온 지 육 년이란 시간 동안 나에게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친구다. 그러던 후배가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간다고 하니 시원 섭섭하면서도 또 하나의 인생 경험을 한다고 하여 내심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 아침 해가 뜨는 사이로 나의 추억의 군생활도 아침 안개처럼 떠올랐다. 오늘은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군대 이야기 하나 해보려 한다. 인생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 든다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방의 의무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오늘도 일선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 또한 15년 전 이맘쯤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봄의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를 무렵 나는 전주의 한 훈련소로 입소하였다. 나는 훈련소 갈 때 총을 개인이 사가야 한다는 농담을 뒤로하고 웃으며 그렇게 입대했다.

“머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겠지 별거 있겠나.”

이런 생각을 하며 입대한 나는 나름 훈련소 생활을 잘 적응하고 동기들과의 즐거운 추억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훈련소에 입대하여 입고 온 옷과 신발을 소포로 집에 계신 어머니께 보낼 때에는 우리 엄마가 이걸 받으시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했는데 그때 어머니는 하염없는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리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의 마음이 그러할진대 자식의 도리를 잘하고 있나 싶은 반성이 든다.

군대는 자대를 배치받고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여실히 느껴지는 이등병 생활 생전 모르는 동네에 와서 그것도 내 위로 수많은 선임들을 상대하는 일은 엄청난 심적 압박을 주는 경험이었다. 요즘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군생활을 할 때에는 구타도 많았고 가혹행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군대의 경험이 사회의 가장 확실한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아주 화끈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방영된 푸른거탑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박장대소를 친 이유도 바로 경험이라는 친구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심리를 가장 확실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사실이다. 나의 요리 공부에 있어도 군대의 취사병이라는 보직은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장군에서부터 간부 그리고 일반 사병, 예비군의 식사까지 책임져본 내 군생활은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지만 오늘은 하나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주제는 바로 소명감과 신념이다.

군에 입대한 나는 사회에서 습득한 기술로 취사병이라는 주특기를 부여받고 취사병으로 복무하게 된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나라를 위해 그리고 전우들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뜻깊은 일이었다. 이등병부터 상병까지 나는 그런 다양한 취사 경험을 바탕으로 즐겁고 유익한 군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던 시기였다. 내가 장군들과 간부들의 회식을 담당한 일을 하다 보니 일반 사병들의 음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단장님의 전출 시점에 맞춰 일반 사병 식당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일반 전우들의 식사를 해본다는 일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을 하고 나서 나는 매우 난감한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그것은 바로 부조리와의 전쟁이었다. 군대도 사회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에 선임들의 나태함으로 소명의식이 결여된 상황에 나는 요리사로서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여기는 요리하는 데가 아니라 사료 만드는 데니까 요리하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취사장에 가장 실세인 선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전우들이 왜 밥을 먹지 않고 피엑스에 가서 다른 음식을 사 먹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잔반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을 보고 한번 더 놀랐다. 나는 시키지 않은 일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었다.

사단장님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군인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부모형제의 안전을 위해 군인이라는 길을 걸으며 자신이 맡은 보직에 큰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우들의 즐거운 식사를 책임지는 큰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부조리와 불법적인 파견으로 비전문적인 인력낭비와 전우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전우들이 땀을 흘리고 와서 먹는 밥 한 끼를 부모의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고 싶습니다. 사단장님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다음 날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사료 이야기부터 부대의 취사 환경까지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불법 파견된 비전문적인 인력들은 원대복귀되었으며 취사장의 주요 업무를 내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착각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선임들 뿐만 아니라 후임들 또한 나태함에 빠져 개혁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나에게 저 미친놈은 여기가 호텔식당인 줄 아냐고 하며 비웃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나의 신념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제일 맛있고 깨끗하고 멋진 취사장을 만드리라!”

먼저 취사장의 식자재의 취급을 기술적으로 분배하여 미리 사용할 것과 나중에 사용할 것을 구분하여 처리하고 취사병들의 일과를 좀 더 계획적으로 실행하였으며 의무대에서 남는 위생복을 개조하여 조리복으로 입었고 명찰과 부대마크 계급을 달아서 소속의식을 고취시켰다. 음식을 하느데에 재료의 맛을 살려 신선하고 안전하게 전우들의 밥상을 준비했다.

6개월이 지나고 내가 전역할 때쯤 우리 부대는 동원사단 최고의 부대로 선정되었고 군사령관의 표창을 받았으며 육군본부 감찰시 우수 취사장의 실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목은 분기마다 실시한 소원수리에서 전우들이 밥맛이 좋아졌다는 칭찬이 줄을 이뤘다. 이런 이유에 사단에서는 수많은 백지 휴가증이 포상되었고 나는 후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며 전역할 수 있었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니 한번 주어진 삶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한 번쯤은 해봐야지! 사람은 시키지 않은 일을 알아서 잘 해낼 때 성과가 있는 거란다. 이 휴가증은 시키는 일만 했으면 생겼겠니 얘들아!”

그렇다 나는 후회 없는 군생활을 했고 대한민국 남자로서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 전에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처럼!

인간은 신념을 위해 전진한다!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쫌 길어졌다. 아마도 흥분해서 그런가 보다. 오늘도 일선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군장병과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다하는 의경과 소방, 교도, 공익근무요원들에게 차별 없는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

2019년 3월 9일 북경에서 김기훈

사족 : 군대에 가는 나의 후배 정훈이에게 용기와 희망의 군생활을 기원합니다. 오늘 이 땅의 평화가 오기까지 너의 의미를 되새기며 몸 건강이 잘 다녀오렴!

“인생은 한 번이다. 그렇지만 연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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