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칼럼

by Kimkihoon


인간에게는 욕망이라는 절실한 본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욕망에 충실하며 사회적 태두리 안에서 자유라는 명분 아래 그 수요를 조절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분은 매우 드라마틱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에서 출생했으며 학생운동으로 곤욕을 치렀고 성공한 셀러리맨의 신화로 정치인의 길을 달리며 청계천이라는 물줄기를 타고 대통령에 까지 올랐다. 4대 강 사업과 자원외교로 토목회사 출신의 경력을 발휘했으며 퇴임 후 정치적인 탄압이라 주장하는 스스로의 과거에 발목이 잡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객관적으로 그분을 회상하고자 했다.

그가 어제 감옥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으로 정치인의 수순을 밟아서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갔다. 무거운 주제인 이런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 모습이 우리 한국사의 중요한 전환점 이기 때문에 오늘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식 이름은 쓰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이며 그의 조부가 창씨개명 당시에게 쓰기야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1964년 한일협정을 반대한 시위를 앞장서서 옥고를 치른 것은 매우 의외의 경력이다.

그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스스로의 생활을 위해 여러 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사회의 하층부터 경험한 노하우를 살려 서민경제의 기본원리를 체득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의 사업적 기지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반정부활동으로 옥고를 치른 그가 사회에 취업할 수 없자. 대담하게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회가 청년을 반정부적으로만 몰아간다면 평생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일할 수 있는 취업의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과연 기회를 어떻게 살리는가를 보여 주는 드라마틱한 일화다.

아마 스스로 권력의 시류를 거슬리기보다 편협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때의 선택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가 토목 건설의 붐이 불기 시작한 현대 건설에 입사하여 불도저식 경영으로 인정받기까지 대한민국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능력 수단의 시대를 달리게 된다. 이는 비단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가진 시대적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개발의 흐름에서 인간의 신념은 옳고 그름이 아닌 가능과 불가능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12월 ‘불도저라 불린 사나이의 진화(The Evolution of a Man Called Bulldozer)’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사회를 서술했다. 그러나 2019년 한국 사회는 불도저로 미는 시대가 아니다. 불도저로 민 땅 밑에서 과거의 유물을 발견하여 보존하는 그런 시대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대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과거의 잘 못을 반성하며 수단이 목적을 위해 갑질 하지 못하게 하는 적폐 청산의 시대에 도래한 것이다. 이는 우리 부모세대가 일께워준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2012년 나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상장을 하나 받은 사실이 있다. 그 상장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한가운데 그 시간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가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이름이 부끄러워 상장을 서랍 깊이 감추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러나 아는 분이 내게 말하기를 상의 의미를 봐야지 대통령의 지위만 보면 되냐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반성하며 그가 스스로 쓴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이란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스스로 행한 업적을 이야기하며 국민의 입장과 의지를 이해하지 못한 지도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우리가 극복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의 경험이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다스가 누구 건지 사대강의 녹조라테는 어떻게 되는지 자원외교의 짐은 누가 지는지 오늘도 우리는 과거의 유물을 파보며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역사는 반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그가 잠시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휴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답답한 서울의 공기만큼이나 그의 연로한 기관지가 무호흡으로 걱정될 때 국민들의 마음은 수십 번 멈춰 심정지 된 때가 많았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국민이 빌려준 말을 탈 때에는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하며 탈지어다. 공무를 위해서! 백화점 쇼핑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채근담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棲守道德者(서수도덕자)는 寂寞一時(적막일시)하고, 依阿權勢者(의아권세자)는 凄凉萬古(처량만고)니라. 達人(달인)은 觀物外之物(관물외지물)하고 思身後之身(사신후지신)하나니 寧受一時之寂寞(영수일시지적막)이언정 毋取萬古之凄凉(무취만고지처량)이라.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적막할 뿐이지만,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깨달은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을 보고 죽은 뒤의 몸을 생각한다. 차라리 한때의 적막을 겪을지언정 영원히 처량한 처지에 놓이지 않게 하라.

2019년 3월 7일 북경의 파란 하늘 아래서 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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