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桑田碧海 상전벽해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다.
봄비가 자작하다. 세상에 내리지 않을 것 같은 물줄기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세상의 물음은 아직도 유원하기만 한데 인간지사는 그렇게 변하면서도 다시 내리는 빗방울 같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베이징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다 보니 여기가 십 년 전에는 그냥 평범한 재례시장이었고 이십 년 전에는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였는데 하는 회상이 들었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신도시가 들어선 변화.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었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생각났다. 모택동과 등소평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어제 어느 시각디자이너의 달력 디자인에 등장했다. 중국 현대사를 통틀어 나라를 세우고 설계한 모택동과 그 설계를 전면 수정한 등소평 그 두 사람을 주제로 달력을 만든다는 생각을 이십 년 전 과연 어느 사람이 할 수 있었을까? 중국은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매우 민감하여 그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면 영웅이 되거나 역적이 된다. 스케일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크다. 그런 중국의 현대사는 사실 요즘 들어 생각해보면 변화무쌍한 것 같아 격세지감을 느낀다.
모택동은 죽어라고 고생은 했으나 나라를 세웠고 나라를 세운 후에는 또 죽어라고 권력을 지키려 했다. 그러다 그 권력의 무상함 앞에서 외롭게 죽었다. 등소평은 죽어라고 권력의 틈에서 살아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살아나고 나서는 죽어가는 중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린다. 바로 개혁개방이라는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던 그 이론은 이제는 다시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사람만 잡는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욕망의 순환에서 정치적 신념을 다시 강조하는 시진핑 시대의 변화가 남다른 이유이다. 뽕밭에서 배를 만들던 사람은 바다를 만나 승승장구 하지만 그 일은 꿈속 바다 일수도 있는 거품이라는 모순을 만들어 낸다. 그래도 인간은 꿈을 꾸길 원하니 저 높은 고층빌딩이 내것은 아니지만 바라보는 눈높이는 분명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고층빌딩에는 유수의 중국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마윈이 새운 알리바바가 바로 그중에 대표적인 케이스다. 마빠바로 불리는 그는 정말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시대의 변화를 너무나도 잘 체득한 인물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은퇴의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순된 시장구조이다. 자유경제체제를 견지하고 있으나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정치체제 과연 이것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나 많은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미국과 무역분쟁 중에 많은 지식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은근히 중국의 구세주라 칭송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독재적이고 폐쇄적인 일당통치를 안팎으로 단련시켜 유연한 중국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독재라는 프레임을 외부의 분쟁으로 자위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신기하기만 하다.
집을 사면 돈을 버는 투기의 현상을 두고 중국의 지도자는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하지만 현실의 욕망은 외면한다. 개인의 부귀영화 그 곧 현실인 사회의 구조에서 높아진 고층 빌딩의 집들은 사람은 못살고 바라만 봐야만 하니 말이다. 인간이 지은 저 거대한 건물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것이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면 아직 우리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주어진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서도 목말라한 그런 이상한 시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어려운 시대
상전벽해의 변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아침이다.
2019년 4월 19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