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현(絃)의 노래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달래준다.”
어제는 중국식 가야금인 고쟁(古箏)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대만 후배가 내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음악을 통하여 사로의 관심사를 대화하는 것에 매우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아침 일찍 현을 조율하고 새로 오는 인연을 기다렸다. 현이란 날씨에 따라 온도와 습도에 따라 그 음색이 달라지니 건조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무렵부터 습도가 높아지는 무렵까지 조율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먼지가 쌓인 고쟁을 꺼내 튕겨보니 그동안 게을러 어루만지지 못한 미안함이 흘러나왔다.
2006년 중국 오스트리아 공동 발행우표 고금과 피아노 두 나라 간에 대표 악기를 담았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년의 소리를 찾는 것이
어찌 쉬울까마는
영혼이 찾아간 음색은
순간의 감동이 메아리치네
인생사 덧없는 뜬구름 같으니
거문고 소리 들으며
회한일랑 접어두게나”
고금이나 고쟁은 중국 특히 동양을 대표하는 현악기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성루에 앉아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친 공성계의 악기도 바로 슬(瑟)이라는 현악기이다. 조조 또한 그의 시 단가행에서 이르기를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我有嘉賓 鼓瑟吹笙” 아유가빈 고슬취생
내게 훌륭한 손님이 있으니
응당 북을 치고 슬을 타며 생황을 불리라.
현악기의 매력은 공명에 있다. 울리는 현의 소리는 인간의 영혼을 울리며 고르고 유려하며 튕기는 맛이 있다. 나는 평소에 고금을 피아노 위에 두고 연주한다 피아노의 현이 고금의 현과 공명을 이뤄 소리를 증폭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악기의 차이는 있지만 소리의 차이는 없기에 그 장벽 또한 없다.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현을 조율하고 정신없이 연주를 하다 보니 엄지와 검지에 물집이 잡혔다. 대만 친구는 손에 인조 손톱을 끼고 연주를 한다고 하나 나는 손가락 스스로의 자연스러움을 좋아하여 그냥 연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의미의 차이이다. 그 사람이 담고 있는 마음의 소리를 악기라는 하나의 장치에 투영시킬 뿐 그것이 기능이나 기술에만 집착해서는 기교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으나 예술의 독창성은 좌우하기 어렵다. 좋은 예술적 감각을 타고나는 것은 좋은 감성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달려있고 그 기준은 지극히 자신의 경험이나 희로애락에 달려있다.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영유하는 삶 그 삶 속에서 행복을 노래하는 것은 충분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2019년 4월 18일 북경에서 현을 연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