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 칼럼
대의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는 국회는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동안 국민들의 불신임과 비아냥을 들어왔을까? 권력의 이익 집단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체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국회위원
이 네 글자를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몇 년 전 한 방송사에서 민주주의의 꽃인 국회위원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스위스의 국회위원은 농부로서 일주일에 회기가 있을 때는 국회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농사를 지으며 농업에 필요한 정책 발의를 한다. 직업이 있는 스위스의 국회위원들은 대부분 실질적인 법의 발의를 위한 경험자들이며 자신들의 분야에서 얻어지고 쌓인 노하우를 정책에 적극 반영한다. 넥타이가 아니 농부의 간결한 옷으로 형식이 아닌 효율을 따진다.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한 이 장면은 우리 국회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점이 되었다.
“한국의 국회위원들은 우르르 몰려가 패싸움을 하고 자신들의 정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식 투쟁이다 머다해서 생쇼를 하니 국민들의 한숨은 나날이 늘어간다.”
어느 외신의 기사 첫머리에 실린 기사가 슬픈 대한민국에 현실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꽃을 피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달려왔다. 그 민주주의 열매를 맺어 국민들의 이름을 불러 볼 때가 올 거라고 이야기했던 우리의 꿈은 언제쯤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왕년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씨가 국회위원이라는 직을 그만두면서 남긴 명언이 있다.
“국회에 와서 코미디 한수 잘 배워 갑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코미디보다 더 웃기게 일어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회위원은 국민이 뽑아준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강했던 과거에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돈만 밝히는 이익집단으로 치부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칼날도 부러지고 민주화의 열풍 아래 우리 국회는 삼십 년이 안 되는 직접적인 민주주의 실현 가치를 놓고 정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 혁명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며 수십 년간 쌓인 적폐와 썩은 물을 청소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다. 시대가 변하면 방법도 변하듯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대에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위원들의 수준도 변해야 한다.
어제 국회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정책 신속처리법(일명 패스트트랙)을 두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여야 간 합의한 법을 두고 몸으로 막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책임을 과연 누가 짊어지어야 하나?
“나 국회위원이야 비켜”
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권위적인 어느 위원
“여기 새 둥지를 틀어”
라고하며 때에 따라 날아가는 철새 의원
“우리끼리 우리 사이에”
라고 하며 인사 청탁하는 적폐의원
“모르니까 넘어가자”
국민들을 개돼지라고 여기는 그런의원
“부르마블보다 더 좋아!”
국민 세금으로 세계여행이 꿈인 미친 의원
을사년의 오적은 그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도 버젓이 살아서 망조를 부리고 있다.
바로잡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은 몸을 망가트리고 버려야 하는 무거운 권위는 국가의 지붕을 무너트린다.
우리 이 시대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네 글자
“두고 보자”
내년 우리의 총선이 기다려지는 때이다.
4월 25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