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수집한다.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by Kimkihoon



내가 살고 있는 베이징에서 어제 일대일로(一带一路) 경제 포럼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중국은 내제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의 위치를 확고이 하고자 일대일로 - 함께 가자 하나의 길로! 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수십개국과 경제 사업을 발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인 계산법이 농후하지만 정치가 국가 정책의 중요한 방향과 노선을 정하는 것이기에 중국의 정책기조는 오랜 기간동안 유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신실크로드 정책을 펼때 나는 이미 십여년전부터 한중일의 미술교류사를 연구하며 나름의 길을 닦아왔다.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시대적 흐름과 부합되는 부분이 있어 오늘 소개 해보고자 한다.

그 내용은 운명적인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용이 길어 나누어 소개한다.

“따르릉”



2011년 여름 일본에서 전화한통이 걸려 왔다.

“김 선생이 부탁하신 그림을 구해놨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괜찮습니까?

“가격은 상관없고 빨리 받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어차피 다음 주에 요코하마에서 제가 참가하는 세계우표전시회가 있으니 직접 가지러 가겠습니다..”


세계우표전시회를 앞두고 그렇게 찾아 해매이던 소율종단의 그림을 구한 순간이었다. 원숭이들이 노니는 꿈에 그리던 그림이 내 손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그 뛰는 가슴을 않고 나는 현해탄을 건넜다. 십년에 한번 주기로 열리는 일본 세계우표전시회에서 나는 ‘맛의 역사’란 주제로 우표수집 작품을 출품하여 최고상인 대금상을 수상한 때였다. 사실은 이미 일 년 전 런던에서 최고상을 받은 터라 우표수집의 관심적인 열기는 정상을 지난 때였다. 그보다 몇 년 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일본 남화에 내 관심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중국에 살기 시작한 2007년부터 나는 동양문화에 매우 심취해 있었고 전공인 요리보다. 그림을 더 좋아했다.

예전에는 돈만 있으면 우표를 구했는데 중국에 살면서는 그림과 공예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았고 내 주머니는 항상 부족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 있어 그림들은 운명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나 단순히 쌓아 놓는다고 해서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표구장인을 찾아 오래된 그림을 새롭게 표구 수리하는 일 또한 매우 흥분되는 작업이었다. 일본에서 남화는 장식성이 강한 미술품이었기 때문에 표구방식이 매우 화려했다. 그런 이유에 그림의 본연의 맛을 찾는데 매우 부적합했으며 대부분 20-30년 단위로 새로 표구를 해서 최후의 표구방식은 역사적 가치가 별로 없었다. 다만 그림을 보관했던 상자와 상아와 옥 재질의 마감재는 따로 보관하여 기록성을 두었다. 또한 새로운 표구방식(이중족자)을 도입하여 그림을 새로 단장하였는데 하얀 천으로 모든 그림을 통일 시켰으며 그림하나 하나 직물상자를 제작 현대의 디지털 기술로 원본에 가깝게 촬영하여 정리, 부착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길 그 많은 미술품을 사는 돈은 어디서 났으며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미술사를 공부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림을 수집하고 정리 하느냐고 묻곤 한다. 스스로 느끼기에 돈은 필요 한데가 있어서 열심히 벌었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잘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내가 못 그리는 그림 혹은 그리기 어려운 그림을 구한다. 또한 그림을 구하며 공부하고 구하고 나서 더욱 연구하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정말 자기가 좋아해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 생각한다.
비단 학교에만 그런 지식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문의 전통 그 수세기에 걸친 계승은 현대 사회와는 확실히 다른 문화이긴 하다. 나의 어린 시절 집안에서는 음식하나 그림하나에도 매우 중요한 요건이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고아하고 단정한 품격이었다. 특히나 서양문화가 득세하는 한국에서는 많이 잊힌 전통이다. 나의 조부님께서는 시서화(詩書畵)도 마찬가지로 여러 분야에 통해야 볼 수 있다고 하셨으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타고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 숙련된 붓의 조화가 필요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하늘이 주어진 환경과 감정의 절실함이 빚어내는 예술이라 가르치셨다. 화가 육법에는 바로 그런 중요한 기운생동(氣韻生動)에 대해 중요시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경험한 것이며 가슴깊이 닿아야 표출되는 예술이라 강조 하고 있다. 세상에 널린 게 요리 재료이지만 요리하는 것은 사람이고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조화이지 않던가? 사실 처음 조부님의 서체를 각인 시킨 것은 제사 때의 지방(紙榜)이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제수음식과 그 위에 곧게 선 신주는 사실 동양의 가장 정신적인 예술이자 생활 문화이다. 그런 생활의 지혜와 전통을 현대의 속성적인 지식의 틀로 설명하긴 무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물림된 세월은 숙성된 장 맛 만큼 예술에도 그 깊이가 다른 것을 하루아침에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은 계승(繼承)의 문제이고 어떻게 자기화 하느냐의 문제이다.



시기적으로 내가 일본 남화를 수집하여 정리 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행운은 세 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다.



1.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많은 전통문화를 잃어버리고 일본은 급속한 서양화되는 과정에서 내가 한국인으로 동양의 전통문화를 계승한 집안의 후예로 한중일의 문화의 연결성을 이해한 것



2. 중국에서 생활하며 우수한 표구(表具)인력과 전문 우표수집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된 연락망과 미술품 경매 기술의 확보와 전문적인 문화 지식층과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



3. 내 스스로가 그림을 공부하며 옛 그림의 화의(畫意)를 생각하며 필법(筆法)을 정진 시켰던 점

이런 이유에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2편에서 계속 됩니다.

2019년 4월 29일 북경에서

나의 소장품을 우표로 제작 소율종단의 작품
일본의 전설적인 화가 설주등양의 작품 월매도
민화 호랑이와 매우 흡사한 일본의 호랑이 매우 귀여운 모습이 특징이다.
내가 수집한 일본미술의 소장품을 주제로 만든 한중일 미술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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