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 발행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우표를 보며 우연히 궁금증이 생겼다. 본래 미술 우표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작은 우표 한 장 안에서 그림을 보며 왜 이 그림이 일본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빼앗긴 것인가? 정당하게 수출한 것인가?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수탈해간 문화재에서 느끼는 치욕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우리는 일본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일본을 알려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접어들며 환쟁이란 이름을 듣게 된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치로 보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공장(工匠)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분의 한계도 있었고 유교적 사회의 허울 좋은 명분은 기술을 천대하여 그 위치를 낮추었다. 좋은 그림은 사대부(士大夫)라고 불리는 양반가 혹은 그 양반들이 노니는 기방(妓房)의 실내장식으로 쓰였다. 일반인은 궁중과 달리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할 이유도 재력도 없었고 그럴만한 사회적 분위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3원 3재 (三園三齋)의 위대한 화가들도 있었지만 수적으로는 조선의 화공은 열악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몇몇 화가들은 중국에서 전해진 화법을 조선의 화법으로 꽃 피웠다. 그에 비하여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회화를 대량(大量)으로 발전시켰다. 일본은 조선과 달리 기술을 중시했고 상업을 발전시켰다. 상업과 유행의 수요에 따라 일본인들은 중국과 조선의 그림을 수입하였고 그 욕구는 일반적인 무역 경로를 비롯해 전쟁과 약탈이라는 형태로도 그 문화적 욕망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수많은 한국과 중국의 국보급 회화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인지(認知) 하지 못하면 무시(無視)하게 되고 무시하면 잃는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중국과 한국의 미술사에 공헌한 것은 없을까? 일본은 그냥 수탈만 해간 약탈자 일까? 일본의 동경 국립 박물관은 아시아 최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한중일의 역대 회화자료들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그 연구 또한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중국에도 없는 목계(牧谿)의 그림은 일본인들의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조선의 최고라 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국보가 되었다. 일본이 투자한 시간은 일이백 년이 아니다. 수세기에 걸쳐 연구하고 감상하였으며 복원하고 수리하는데 그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의 둔황 석굴의 일부 벽화나 서양미술의 백미라 꼽히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역시 일본인의 손에 의해 복원 보존 처리된 것은 일본의 문화재 보존기술이 얼마나 잘 집약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동양의 명적들의 출판 또한 일본이 선구자이었음을 이미 아는 전문가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 나는 또 다른 질문을 해보았다. 왜 우리는 일본의 미술품을 수집하지 않을까? 역사를 알려면 사료가 필요하고 그 거울은 두 개의 상대적인 비교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빼앗긴 문화재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아가 상대방의 문화재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인지(認知) 하지 못하면 무시하게 되고 무시하면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문화적 평화 방법
연일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들과 민족적 우월감 혹은 과거에 집착하여 사과를 요구하는 증오 섞인 외침 그 과거를 잊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써 외면하는 뻔뻔함 우리는 어쩌면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도 역사적 상흔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한중일 삼국이 이 치유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에서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서양의 문화역사가 들은 동양의 미술을 연구하며 그 역사적 가치를 논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삼국의 문화는 서로 공통점이 있고 그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기 위해 문화적인 동질성을 추구하며 그 공존의 의미를 공감하여 평화적인 시대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의무가 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만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야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이유에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집안의 교육과 조부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화안을 토대로 역사적 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의 미술품들을 수집하게 이르렀다. 또한 고령화되어가는 일본의 사회구조와 일본의 젊은이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전통문화예술의 틈새 속에서 잊혀가는 일본의 남화(南畫)들을 수집하며 그 기회가 금전적 투자만이 아닌 역사적 숙명적 가치를 띄고 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한국인으로서 한중일 삼국의 문화적 교량 역할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문화적 평화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도 일본의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는 문화적 자신감을 갖고 싶다. 일본의 남화가 기술적으로 매우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반대로 기교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 그 안목을 가지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큰 행복인 것 같다. 사람들이 후에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어보면 그냥 이야기하고 싶다. 살아 있음에 무언인가를 관찰하여 기록하고 가슴으로 담아 세상에 전하면 참 행복하다 느끼기 때문이라고!
역사는 살아온 인간을 이야기하고
문화는 아름다운 인간을 꽃 피게 하며
예술은 자유로운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그 인간은 그 문명이란 세상에서
서로 함께 살아간다.
나는 그 문명의 길을 걷고 싶다.
회화길 도록
2009년 4월 30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