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되돌아보면 한나라의 대통령이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국정을 운영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이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인터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더불어 우리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고 통치력을 행사했던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고자 한다.
이승만 친일 친미 독재로 뭉쳐 1-3대
이승만은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미국이라는 가장 큰 배경을 갖고 이념 전쟁의 선봉에 서서 친일파와 친미세력의 협력과 협조 속에 국민에게 뭉치면 산다고 연설했던 정치가 혹자는 모택동과 장개석이 싸울 때 한반도에서는 김일성과 이승만이 싸운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매우 흡사한 정치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박사 이박사 할 정도 미국식 민주주의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정치를 하여 하였음에도 결국은 부정선거와 독재를 하다. 4.19 의거로 쫓겨났고 결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자신의 육성을 라디오 방송으로 틀어놓은 채 한강대교를 폭파한 뒤 자신은 대전으로 피신하였다. 이점만 보더라도 이승만은 미국의 좋은 대리인이었지 김구 선생처럼 민족의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는 아니었다. 자신의 칠순 기념우표를 만든 독재자이기도 하다.
윤보선 우표 없는 유일한 대통령 4대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인하여 1962년 사임하고, 1963년 민정당을 창당하여 그 해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실패하였다. 윤보선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유일하게 우표가 없는 대통령으로 후에 최규하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대통령으로 인식되어왔다.
다까기 마사오 박정희 산업화의 독재자 5-9대
박정희를 두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회주의가 낳은 확실한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다음과 같다.
개와 말이 되어 일본 천황에게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쓴 일본군 장교로 관동군에 배치된 시대적인 친일파
공산주의에 심취했으나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전형적인 변절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의 상관인 장도영을 몰아내고 지위애 오른 탁월한 권력자
독재를 하다 여자 끼고 술 마시다. 야밤에 자신의 최측근인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그때 그 사람
그런데 박정희의 패러다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도덕적 의식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시점이었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도 돈만 많이 벌고 가난만 벗어냐면 된다는 시대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인물이다.
엉겁결에 대통령 최규하 10대
대한민국의 10대 대통령으로 1975년부터 국무총리로 재직하다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으며, 그해 12월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전두환 등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존재감이 없는 허수아비 대통령
무인시대 전두환 빛나는 머리로 광주를 박살 내다.
군인 출신으로 한국의 제11대, 제12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로 군사정권을 이용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무력 진압함으로써 많은 시민들을 희생시키고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재임기간 중 물가안정, 서울 올림픽 유치, 무역흑자 등 경제면에서 인기를 누렸다. 퇴임 후 광주 민주화운동과 5 공비리 문제로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하였고, 1996년 12·12 및 5·18 사건, 비자금 사건과 관련하여 사법 처리되었다.
본인이라는 말과 왜 이래라는 말이 유행어이다.
노태우 보통사람 되고픈 이인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79년 '12·12 사태'에 가담하여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민주정치세력 진압 등 신군부세력의 정권 획득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6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1995년에는 재임기간 중에 비자금을 모금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검찰에 구속, 재판을 받는 등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었다. 전두환과는 매우 아름다운 친구 사이이다. 그 이름이 아름다울지는 모르겠지만.
문민정부 김영삼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9선 의원이었으며, 1985년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 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고,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1990년 민주자유당을 창당, 대표 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민주화의 투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기여했으며 독재 청산과 금융실명제등 탁월한 업적도 있었으나 전정부가 벌려놓은 빚잔치와 수많은 어음을 떠맡아 국가 부도에 몰렸다.
노벨평화상의 김대중
1997년 11월부터 시작된 IMF의 관리체제의 외환위기의 재정·금융 긴축과 대외개방,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다.
1999년 5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6월에는 미국 경제 주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아시아 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에 선정되었다. 2000년 1월 자유민주연합과의 내각제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새천년민주당을 출범시켜 초대 총재에 취임하였다.
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하여 6·15 남북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또한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 그리고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노력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된 아쉬움이 있다.
그리운 사람 노무현
한국의 제16대 대통령.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 뒤 5 공비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한 뒤 고향인 봉하마을에 귀향하였으나 정치적인 탄압과 모함으로 재임 중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서거하였다. 노무현은 자신에게는 냉혹했으나 타인에게는 부드러운 전형적인 인물로 그의 명연설들은 지금의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다.
수양재처럼 운하를 건설하겠다 공언한 이명박
다스베이더처럼 자신을 가린 사업가
한국의 제17대 대통령. 고려대학교 상과대 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현대건설에 입사해 단기간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제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후보로 2002년 서울 특별시장에 당선되어 시장을 지냈으며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가 재임한 한국은 우경화로 퇴보하는 극렬한 시점이었으며 나라가 망해가는 특유의 적폐가 꽃을 피우는 시기였다. 그 열매는 다음의 여인이 맺는다.
순실의 시대 근혜
한국의 제18대 대통령. 5대~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의 딸로서 제15~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6년 12월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국회에서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으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함으로써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나라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썩은 열매의 시기였다.
콩나물 오백원도 사보지 못한 공주가 어찌 민심의 어려움을 알겠냐마는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허수아 비였을 뿐
촛불 대통령 문재인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제19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나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득표율 41.1%(1342만 3800표)로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남북관계의 회복을 모색하고 대미관계를 진척시켰으며 소득주도 성장으로 최저인금을 개선야여 양이 아닌 질적인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적폐 새력들이 도처에서 날뛰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도자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위대하여 지도자를 뽑은 것이기에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더 위대한 여장을 하리라 본다.
2019년 5월 10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