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자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 칼럼

by Kimkihoon



사람이 살아가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즐거운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내가 요리라는 재주를 터득한 것도 어찌 보면 운명 같은 일이니 옆에서 한 줌 한 줌 맛을 본 친구들은 나를 그때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하곤 한다.

“당신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야기해주면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주겠어요.”

-미각의 생리학의 저자 앙텔름 브라야 샤바랭-

어제는 퇴근하고 나를 찾아온 오랜 지기를 위해서 모처럼 쌀을 씻어 안치고 굴비 두 마리에 꽈리고추 멸치에 볶아내고 오징어 젓갈이랑 상추쌈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가 중국 친구임에도 사랑하는 나의 주특기 청국장을 진득하게 끓여 냈다.

“세상에 청국장처럼 향기로운 맛이 있을까? 그저 무방비 상태로 하얀 쌀밥 비벼 상추에 싸서 오징어 젓갈 언저서 입안으로 들어가면 눈물인지 콧물인지 황홀경이 퍼지네”

“굴비는 들기름에 겉은 바삭 속은 윤기 흐르게 구워서 그놈 눈이 하얗게 변하면 그저 천국으로 간 것이라 하얀 소금 뿌려서 간을 맞추고 깨를 툭툭 털어 마중 나가니 기다린 숟가락은 얼른 입으로 들어가라 재촉 하누나.”

맛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그 맛을 전해준다는 것은 더욱 보람된 일이며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사람에게 공덕을 쌓는 일이기 때문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까? 자식에게 주는 정성스러운 마음의 밥 한 끼는 사람을 감동하게 하고 얼었던 가슴을 녹여주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에 일이다. 다른 아이들은 국영수 학원을 다니면서 학업에 매진할 때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치고 매우 자유롭고 낭만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인터넷 경매를 하던 나는 점심시간이면 물건을 발송하기 위해 선생님께 외출증을 끊어 출타를 했고 학교 앞 우체국에서 물건을 발송하고 돌아오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는 가끔 탕수육이나 고구마 맛탕을 해다 드렸는데 그중에서도 체육선생님 중에 미친개라고 소문난 선생님이 계셨다. 이 선생님은 나를 얼마나 이뻐하셨는지 내가 해드린 고구마 맛탕을 정말 눈물을 흘리시면서 들셨다. 한 번은 두발 검사날에 긴장된 분위기에 내 순번이 돌아왔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면서 윙크를 하셨다. 다녀와보니 다른 아이들은 이미 머리에 고속도로가 나있었고 두발 검사는 끝나 있었다. 나는 순간 맛탕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미소 지었다.

또 한 번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다리에 골절상을 입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신 일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 병문안을 가려고 집에서 닭죽과 구절판을 해서 짊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갔다. 병문안을 가서 선생님을 뵈니 홀쭉해지신 존안이 안쓰러웠다. 닭죽과 구절판을 꺼내서 선생님께 올려 드리니 선생님의 눈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 계셨다. 나는 왜 그런지 몰라 구절판 하나를 얼른 쌓서 입에 넣어 드리면서 선생님 얼른 쾌차하셔서 저희들을 보살펴 주세요.라고 응석을 부렸다.

“기훈아 고맙다”

사람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감동받는다고 했던가 살면서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감동받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행복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고 또 보람차다. 후배들이 전화 오면 형이 해준 순대볶음이 그립다고 그러고 바삭하게 튀겨준 탕수육이 그립다고 하는 걸 보면 사람은 먹는 추억이 삶의 큰 부분으로 남아 회상하는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감기 기운이 있으시면 말씀하신다.

“아들! 엄마 게살스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바라보는 모습에 흐뭇하다.
요리하는 삶이 행복한 하루이다.

2019년 5월 11일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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